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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핵실험장 폐쇄 … 진정한 비핵화 초석돼야

중앙일보 2018.05.14 01:16 종합 30면 지면보기
북한이 오는 23~25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해 영구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폭파 현장에 한국과 미국·중국·영국·러시아 언론인을 초청해 지켜보게끔 하겠다고도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는 첫 가시적 조치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비핵화 조치에 들어감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보상을 얻으려는 전술로도 주목된다. 때마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2일 “북한이 빠르게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하면 한국 같은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북, 다음주 풍계리 실험장 공개 폭파
미국 “비핵화하면 초대형 당근” 화답
핵 전문가도 초청해 진정성 보여주길

지난 9일 방북 때 김정은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하면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에다 경제보상까지 패키지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초대형 당근’ 제안인 셈이다. 북한의 핵실험장 폭파가 북·미 간 신뢰를 쌓아 폼페이오 장관의 제안이 실현되는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하면 즉각 전례 없는 대규모 경제지원에 나서겠지만, 그에 앞서 비핵화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 역시 유례없이 강력하게 실시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증 능력을 갖춘 다른 나라들과 손잡고 군부대를 포함한 북한 전역의 핵 관련 의심 시설을 불시에 사찰할 방침이라고 한다. 당장 미국은 북한에 핵탄두와 핵물질·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상당 부분을 조기에 해외로 반출하라고 요구 중이며, 이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어깨에 달렸다. 핵실험장 폐쇄 결단으로 첫 삽을 잘 뜬 행보를 계속 이어가길 기대한다. 과거 6자회담은 핵 동결·불능화·검증·폐기 등으로 프로세스를 잘게 쪼개 북한에 단계별로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가 검증 단계에서 가로막혀 무산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미국은 이번만큼은 핵폐기를 최우선 순위로 삼아 ‘조기 일괄 타결’을 하겠다는 입장이 철통같다. 북한은 이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주장해 온 ‘단계적·동시적 조치’에서 벗어나 확대된 사찰 요구를 받아들이고 핵무기도 조기 반출해  핵실험장 폐쇄 결단으로 보여준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시킨다면 미국의 ‘초대형 당근’도 훨씬 앞당겨 실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핵실험장 폭파 현장 초청 대상에 핵 전문가들을 뺀 것은 아쉽다. 핵실험장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현황과 능력을 보여 주는 핵심 지표다. 북한이 진정 비핵화를 결단했다면 전문가들이 핵실험장을 찾는 걸 기피할 이유가 없다. 백악관도 “국제전문가들에 의해 사찰과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핵실험장) 폐쇄가 북한 비핵화의 핵심 조치”라고 강조한다. 북한이 전문가들을 초청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제2의 영변 냉각탑 폭파쇼”라고 핵실험장 폐쇄를 깎아내리는 목소리는 잦아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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