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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교육감님, 민원 있습니다

중앙일보 2018.05.10 01: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임장혁 중앙SUNDAY 차장

임장혁 중앙SUNDAY 차장

오전 11시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몰랐다. 미세먼지를 피해 두 아들과 실내에서 배드민턴을 치기 위한 발걸음이 정처 없는 여정이 될 줄은.
 
아이들이 새로 산 배드민턴 채를 휘둘러보겠다고 벼른 그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일부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된 4월 15일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아빠와 뛰어놀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린 아이들의 눈망울엔 간절함이 맺혀 있었다. 필요한 건 숨을 쉬며 배드민턴 채를 휘저을 천장이 조금 높은 작은 실내였다.
 
먼저 찾은 곳은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였다. 요즘 웬만한 초등학교들처럼 서울 종로구의 이 학교에도 그럴싸한 강당 겸 체육관이 있다. 다행히 교문을 넘었지만 체육관으로 가는 출입문은 어림없었다. 곧 옆 동네 주민자치센터가 떠올랐다. 종로구에서 보기 드물게 천장 높은 체육 공간이 있는 센터다. 한참 만에 연결된 구청 당직자에게서 알게 된 것은 ‘예약 필수’ ‘유료 대관’이라는 정보였다. 준비성 없는 아빠라는 자책과 함께 억울함이 꿀렁댔다. 마스크 없이 거닐 날이 손에 꼽는 시절이지만 집 근처에서 배드민턴을 치려고 주초부터 기민하게 움직일 아빠가 몇이나 될까.
 
어느새 허기가 느껴졌지만 뭔가 더 시도해야 하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기대를 넘어 불만으로 바뀐 아이들의 눈빛 때문에. ‘제발…’이라고 되뇌며 둘째 아이가 한때 축구를 배우러 다니던 국민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30~40대 농구 동호인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점심 때라도 기회가 날까’ 하는 희망이 사라지는 데 10초면 충분했다. “몇시까지…”라고 조심스레 꺼낸 말을 “4시요”라며 자른 후보 선수는 배드민턴 가방을 둘러맨 유치원생 둘째를 발견하고는 한마디 더 했다. “애들 다쳐요.”
 
절망은 20여 분 차를 몰아 도착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정점에 닿았다. 종로구 유일의 실내 배드민턴장에선 동호인 배드민턴 대회가 한창이었다. 코트를 메운 50~60대들이 박주봉급 스매싱을 날리고 있었다. 두 아이도 고개를 떨궜다. 배드민턴 채는 마지막으로 들른 경복고 체육관에서 겨우 꺼낼 수 있었다. 20분 남짓 지났을까. 정체 모를 50~60대 남녀 60~70명이 대형을 펴기 시작했다. 짧은 세대 공존은 둘째 아이의 실수로 배드민턴 네트를 고정하는 줄이 풀리는 순간 끝났다. ‘툭’ 소리에 100여 개의 눈동자가 아이를 향했다. 오후 3시였다.
 
셔틀콕만 봐도 분통이 터진다. 미세먼지 가득한 주말에도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한다. 초등학교 체육관을 개방하라. 안전을 책임질 사람과 예산이 없다면 매 주말 체육관을 교대로 지킬 ‘녹색 아버지회’라도 만들면 된다. 어린이의 뛰어놀 권리를 지키겠다는 교육감 후보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다.
 
임장혁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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