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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신청률 80% 지급률 10% … 홍보수단 전락한 일자리 안정자금

중앙일보 2018.05.10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은 8일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187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고용불안 없이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출범 1주년에 맞춰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정부·기관 독려로 중복 신청 많고
자격 요건 안 되는데 접수하기도
단시간 근로자 지원 월 10만원 안 돼
주먹구구식 예산 편성 비난 자초

실제로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한 사람은 80%에 육박한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부터 유관 부처 공무원은 물론 근로복지공단 등 범 정부기관이 모두 신청서를 받으러 뛰어다닌 결과다. 이 덕분에 1월 말 3.4%에 불과하던 신청률이 확 올랐다.  
 
한데 이상한 게 있다. 이 차관의 말대로 노동자가 혜택을 입었다면 신청 건수가 아니라 지원액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지원금액은 물론 예산(2조9294억원) 대비 집행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런 식의 기울어진 홍보를 하는 데는 속사정이 있었다. 확인 결과 4월 말 현재 집행액은 2828억1500만원이었다. 집행률이 9.7%에 불과하다. 고용부는 “신청서류를 심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그렇더라도 납득이 안 된다. 처리기한은 18일이다. 이를 고려하면 신청한 달에 곧바로 지원금을 못 준다고 쳐도 직전 달에 신청한 물량에 대해서는 지급돼야 한다. 3월 신청률은 63.1%였다. 더욱이 신청한 달뿐 아니라 그 전까지 소급해서 지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집행률은 너무 낮다. 예산을 한 해 동안 누적해서 집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4월 집행률은 20~25%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정부가 홍보한 신청자 수에 허수가 있어서다. 고용부와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사업주의 과세소득이나 법인의 당기 순이익이 5억원을 초과해 신청 요건이 안 되는데도 신청한 경우가 있다. 또 고용촉진기금과 같은 국가재정지원을 받는 업체는 대부분 영세업체인데, 이들 기업이 지원금을 신청해 중복 지원으로 탈락한다. 여기에다 여러 기관이 찾아올 때마다 신청서를 쓰는 바람에 중복으로 신청된 사례도 있다.
 
영세 사업장이 가진 고용시장의 특성도 한몫했다. 영세 기업이나 자영업 사업장은 근로자의 이동이 활발하다. 예컨대 신청 당시에는 5명이던 근로자가 심사 도중에 3명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실을 예산 책정 당시에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책 홍보도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지급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한 달에 22일 이상 일한 일용 근로자에게만 이 금액이 지원된다. 이보다 근무 일수가 적으면 10만~12만원으로 깎인다. 또 아르바이트하는 주부나 고령자, 학생은 단시간 근로자(주 40시간 미만)가 많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일용 근로자보다 적다. 주당 10시간 미만은 3만원, 20시간 미만은 6만원, 30시간 미만은 9만원, 40시간 미만은 12만원 등 근무시간별로 차등지원된다. 영세 자영업자에게서 “실제 지급되는 돈을 보니, 그 돈 받으려고 신청했나 싶더라”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신보라(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 예산을 주먹구구식으로 편성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며 “일자리 추경 심의를 할 때 타당성을 세밀히 따져 국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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