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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통화스와프의 추억

중앙일보 2018.05.08 01:48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한국이 외국과 맺은 첫 통화스와프는 2001년 일본과의 20억 달러짜리 계약이었다. 그 후 계약 규모가 2011년 700억 달러까지 꾸준히 늘었다가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양국 갈등이 빚어지면서 기존 계약이 하나씩 만기가 돌아왔지만 연장되지 않았고 결국 2015년 2월 마침표를 찍었다.
 
통화스와프는 필요할 때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빌려 쓸 수 있는 ‘외화 마이너스 통장’이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말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내려도 곤두박질치던 금융시장이 통화스와프 한 방으로 정상화됐다. 하루 만에 원화가치는 177원이 뛰었고 주가도 12%나 치솟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시장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신흥국이 외환보유액을 쓰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미국 국채를 내다 팔면 미국 등 선진국도 피해를 보게 된다는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 논리를 적극 설파해 공감대를 끌어냈다. 당시 미국이 이미 한 달 전인 그해 9월 주요 통화국이 아닌 호주·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과 통화스와프를 맺은 만큼 분위기도 조성돼 있었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브라질·싱가포르·멕시코가 ‘달러 우산’에 포함됐다.
 
최근 아르헨티나·브라질·터키 등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미국 금리 상승으로 외국인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일주일 새 기준금리를 세 번에 걸쳐 12.75%포인트나 올리는 극약처방까지 썼지만 페소화 하락을 막지 못했다. 경상수지·재정 적자가 심각한 이들 나라와 달리 한국은 펀더멘털이 튼튼하다. 금융시장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은 아니다. 국제금융통이었던 고(故) 김익주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2013년 ‘국제 금융시장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라는 칼럼에서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은 위기의 본질적 특성”이라며 “위기는 때때로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전염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개 가능성을 거론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달라진 동북아 정세를 잘 활용하면 감정싸움에 끊긴 한·일 통화스와프 복원은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9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이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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