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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지 않던 교사생활 끝까지 가게 한 할아버지의 편지

중앙일보 2018.05.05 15:04
[더,오래] 이상원의 포토버킷(20)

“선생이 우리 학교에 와서 함께 있는 동안 공부를 계속해 학자가 되든지 교육에 관심을 둬 교육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고 수 십 년의 세월을 보낸 뒤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인생의 공허감을 발견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가 『철학과 현실』 지난해 겨울호에서 한 말이다. 김 교수가 중·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할 때 새로 부임해 오는 선생들에게 전한 우정의 충고라고 한다. 아들이나 딸 혹은 제자가 교육에 몸 바치겠다고 했을 때 교육은 귀중한 책임이고 사명이지만 인간적 성장이나 인격적 높이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양순(65) 운전진로성장연구원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얼마 전 읽은 위의 글을 떠올렸다. 이 원장은 초등학교 평교사부터 교장까지 40년 가까운 세월을 초등교육에 헌신해오면서도 자신의 배움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동료 교사에게 아낌없이 전수하는 데 멈추지 않고 정년퇴임 후에도 연구원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학생과 부모, 교사들과 함께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제자들의 성장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성장 또한 멈추지 않는 비결과 원동력이 궁금했다.
 
정년퇴임 후 연구원을 설립해 배움과 가르침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양순 원장. [사진 이상원]

정년퇴임 후 연구원을 설립해 배움과 가르침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양순 원장. [사진 이상원]



미술공부하고 싶었으나 아버지 뜻에 따라 교대 진학  
이 원장이 원래부터 교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미술이 하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담임을 맡았던 미술 선생님 덕분에 미술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운 이후로 꿈은 더 커졌다. 그러나 딸이 선생님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가 당신 마음대로 공주교대에 원서를 내는 바람에 내키지 않게 교대에 진학했다.
 
입학 후에 조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지도교수로부터 작가 정신에 대해 배울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졸업할 즈음 교사가 남아 돌아 발령이 바로 나지 않은 것을 기회 삼아 2년 동안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닦아 충남도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1977년 충남 당진의 초등학교에 처음 발령이 났을 때도 조금 근무하다가 유학을 가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작가 활동을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내키지 않게 시작한 교사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미술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미술도 가르치고 틈틈이 제 작품활동도 한 거죠. 전시회도 열었고요. 그렇다고 교사 본연의 임무에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어요. 10년 근무 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발령받았는데 이때 본격적으로 교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사건이 있었죠. 저희 반 아이의 할아버지가 저를 칭찬하는 편지를 교육청으로 보내 제가 좀 유명하게 됐어요. 부끄럽기도 했지만 힘도 났지요.”

 
당시 이 원장은 아이들 일기장에 소감을 길게 적어주면서 소통했다. 손녀딸 일기장을 읽는 것이 큰 낙이었던 할아버지가 1년 내내 한결같이 정성스럽게 소감을 적어주는 선생님에게 크게 감동해 교육청에 칭찬편지를 써 보냈던 것. 장학사가 일선 학교를 돌며 이 편지를 모범사례로 발표까지 했다. 포상으로 호주·인도네시아·싱가포르에 국외연수를 다녀온 후 이 원장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됐다.
 
교사수업 실기대회에 출전해 수업계획 세부안을 다섯 시간 동안 신들린 듯이 적어 내려가 심사위원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교육청에서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이후 15년 동안 1급 정교사 대상의 연수과정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일반화한 ‘방과 후 학교’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이 원장은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정의 자녀를 모아 방과 후에 공부도 가르치고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고마워한 것은 물론이고 교장까지 나서서 크게 칭찬한 일이었다. 나중에 여성개발원 세미나에서 ‘취업모 자녀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 적용 사례’로 발표해 큰 화제가 돼 일간지에 인터뷰가 실리고 장관표창을 받기까지 했다.
 
이 원장은 28년 동안 평교사로, 이후 12년 동안 교감과 교장으로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8월 정년으로 퇴임했다. 평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이들과 학교생활도 보람 있었지만, 교감과 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초임 교사의 수업컨설팅과 멘토링 활동 등 학교의 기반을 다지는 일에서도 큰 보람을 느꼈다.
 
40년 가까운 교사생활을 마감하는 정년퇴임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이양순 원장. [사진 이상원]

40년 가까운 교사생활을 마감하는 정년퇴임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이양순 원장. [사진 이상원]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 원장 스스로가 밝혔던 것처럼 원래는 끝까지 교사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 정년퇴임 때까지 근무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처음 발령 날 때부터 인생의 장기계획을 세웠던 것 같아요. 그때는 끝까지 교사생활을 할 것은 아니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미술이 좋아서 그랬던 것이지 교사가 싫은 것은 아니었죠.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점점 교사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열심히 한 데다 운도 따라 몇 번 인정을 받고는 하니까 신이 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끈 것 아닐까요?”

 
퇴임 후에 ‘운정진로성장연구원’을 설립한 계기에 관해 물어봤다. 

“평생 게으름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런데 정년퇴임 하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빈둥거리게 되는 거예요. 아차 싶었지요. 처음에는 경력을 살려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왕 하는 거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미술과 잘할 수 있는 상담, 교육을 활용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추구하는 ‘발도르프 교사 교육과정’도 수료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예술교육을 특히 강조해 제가 추구하는 목표와 잘 맞았어요.”

 
발도르프협회에서 인지학을 가르쳐 준 독일인 슈넬 선생님과 함께. [사진 이상원]

발도르프협회에서 인지학을 가르쳐 준 독일인 슈넬 선생님과 함께. [사진 이상원]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교사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경험을 살린 조언을 부탁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젊을 때는 거꾸로 선택하는 것이 도움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미술은 좋아하는 일이었고 교사 일은 잘하는 일이었어요.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 겸 부업으로 삼았더니 우연히도 균형이 잘 맞았습니다. 잘하는 일을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좋아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할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있습니다. 저도 최근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이양순 원장이 정년퇴임 기념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쓴 책. [사진 이상원]

이양순 원장이 정년퇴임 기념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쓴 책. [사진 이상원]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꿈에 관해 물었다. 

“퇴임하면서 『나를 키운 아이들』이라는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웠다고 생각하며 평생 학교에서 근무해 왔는데, 교사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돌아봤더니 아이들이 저를 키웠더라고요.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을 함께 실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어린이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사람’이라는 비전은 학교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죠. 제가 받은 것을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소망의 촛불을 인생 끝까지 살리고 싶습니다.”

 
이 원장은 교사생활 틈틈이 미술교육과 상담심리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퇴임 전에 방학을 이용해서 미술을 가르치고, 집단상담을 하고, 인문고전 독서지도를 했다. 퇴임 후에는 발도르프 교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진로상담전문가 자격과 미술 심리상담사 자격도 취득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진로선택과 지속적인 성장을 돕는 연구원도 설립했다. 
 
평생 쉴 새 없이 가르침과 배움을 반복하는 이 원장을 보면서 은퇴 이후에도 일을 찾아야 하는 반퇴 시대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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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필진

[이상원의 소소리더십]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며 성공보다 성장이 행복의 열쇠임을 알았다. 소탈한 사람들의 소박한 성공 스토리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이끈 소소한 리더십을 발견해서 알리는 보람을 즐긴다. “애송이(이탈리아어로 ‘밤비노’)들의 성장을 돕는다”라는 비전으로 ‘밤비노컴퍼니’를 운영 중이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뀐’ 성장스토리를 담은 『몸이 전부다』를 출간(2017년)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 등에서 ‘성장의 기회와 비결’에 대해 강연을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연습을 통한 실력축적과 함께 생각, 말, 행동 등의 좋은 습관으로 키워지는 셀프이미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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