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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 12년, 읽은 책 다 쌓으면 남산타워 4개 높이

중앙일보 2018.05.04 00:22 종합 24면 지면보기
화장품 업체 한국콜마는 강력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회사의 소문난 독서광들인 최완진·이지수 대리, 박지연 과장, 홍민영 차장, 우경명 콜마파마 대표, 송재하 대리(왼쪽부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화장품 업체 한국콜마는 강력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회사의 소문난 독서광들인 최완진·이지수 대리, 박지연 과장, 홍민영 차장, 우경명 콜마파마 대표, 송재하 대리(왼쪽부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줄의 문장, 한 권의 책이 사람을 바꾸고 기업을 바꾸고 공동체를 변화시킨다.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 꼼꼼하고 진득하게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게, 책읽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미래를 설계하는 기업, 독서동아리를 격주로 소개한다. ‘책읽는 마을’ 이야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한국계 문영미 교수가 쓴 『디퍼런트』를 특히 감명 깊게 읽었어요.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결국 제품의 내용이 엇비슷해져서 한 기업만의 장점은 사라진다는 대목에서 아차 싶더라구요.”
 
화장품 업체인 한국콜마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독서 간증’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이 회사 마케팅팀에서 시장분석, 제품 기획 일을 하는 박지연(33) 과장. 그에게 지금까지 사내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읽은 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경쟁사와 어떻게 차별화할지, 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데 책 한 권, 몇 시간의 독서가 그동안의 일 처리 방식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였다.
 
199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업계의 숨은 실력자다. 아모레·미샤 등 유명 화장품을 개발·생산해 납품한다. ODM 방식이다. 지난 2월엔 숙취 해소음료 ‘컨디션’으로 유명한 CJ헬스케어를 인수해 주목받았다. 연 매출 1조원을 넘기게 됐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독서 프로그램이다. 2006년부터 본격 시행한 ‘KBS(Kolmar Book School) 제도’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사임당로에 있는 한국콜마의 서울사무소를 찾았다. 박지연 과장을 포함해 이 회사의 소문난 독서광 여섯 명이 독서의 재미와 의미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인사총무팀 송재하(31) 대리는 “『이런 내가, 참 좋다』를 읽고 인생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런 내가…』는 한 살 어린아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100명의 꿈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한국콜마 임직원들은 2015년 이 책을 읽은 독후감 모음집 『꿈꾸는 사람은 누구나 청춘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기획팀 최완진(33) 대리는 “책은 읽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에 나온 대로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본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책을 사랑했던 건 아니다. 회사가 변화시켰다. 한국콜마의 임직원들은 누구나 1년에 6권(업무 관련 2권 포함) 이상 읽어야 한다. 읽으면 반드시 독후감을 써서 사내전산망에 올린다. 회사 강준영 전무는 “2006년 이후 임직원의 누적 독서량을 높이로 환산하면 남산의 N서울타워 4개 높이인 920m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독후감 4만1279건(4월 11일 현재)이 나온 4만1279권을 한 줄로 쌓아 올리면 그 높이가 된다는 얘기였다.
 
등 떠밀려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일상의 변화를 얘기했다. 영업기획팀 이지수(27) 대리는 “『며느리 사표』 라는 책을 읽고 엄마를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누구의 아내이거나 엄마, 며느리였지, 한 번도 자기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엄마를 위해 자신과 함께 하는 둘만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일곱 살 난 딸을 둔 홍민영(36) 차장은 “아이가 나를 따라 책 읽으며 한글을 깨쳤다. 지역도서관에서 아이가 자기 독서 카드로 빌린 책이 100권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콜마파마 우경명(58) 대표는 실용주의자다. 콜마파마는 한국콜마의 제약부문 관계사다. 그는 “뭐라도 배워서 써먹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다. 하다못해 독후감을 자꾸 쓰다 보면 문장력이라도 는단다. 그래선지 우 대표는 지난 2월 저자가 됐다. 상아탑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현장 체험을 녹인 경제경영서 『내일도 무사히 출근했습니다』이다. 우 대표는 “책을 낸 데는 회사 독서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다”고 관련지었다.
 
이런 독서 열기와 회사 실적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적어도 창업주 윤동한 회장은 독서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확고한 듯했다. 무엇보다 윤 회장 자신이 엄청난 독서광이다. 그는 2016년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윤 회장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전 10권)를 여섯 번,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전 10권)을 일곱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맛이 달라서란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보인다.
 
“한국콜마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거나 인사 평가를 할 때 인문학을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삼습니다 (…) 기업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 이윤을 내는 것이 작동원리이므로 ‘사람의 무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문인 인문학이 회사원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13쪽)
 
기업이 잘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한데, 사람 사이의 이해와 배려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는 얘기였다.
 
‘책읽는 마을’은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받습니다. 본지 지식팀(, 02-751-5379) 또는 2018 책의 해 홈페이지(www.book2018.org)에 사연을 올려주시면 취재해 드립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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