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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5월 5일로 탄생 200주년…자본주의 각성제론 여전히 효력

중앙일보 2018.05.02 13:01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마르크스 '자본론' 썼던 19세기엔
산업혁명으로 국가경제 발전해도
노동자는 소외된 채 비참한 생활
철학·문학 등 인간 중심 지성 분노
사회주의 단체 결성돼 저항 채비
혁명과 이념의 20세기 이어졌지만
소련·중국·베트남·쿠바 개혁 나서
마르크스 경제실험 실패했지만
불평등·실업·갑질 등 문제 많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종으론 유효

카를 마르크스. 1875년의 사진이다. [중앙포토]

카를 마르크스. 1875년의 사진이다. [중앙포토]

 
오는 5일로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찾았던 영국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마르크스 무덤 앞에는 누군가 놓아둔 ‘It’s time to call Marx(이젠 마르크스를 부를 때다)’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이처럼 마르크스는 태어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하고 반추되는 사상가다.  
철학자·경제학자·정치이론가·역사학자·사회학자인 마르크스는 유럽을 배회하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현실 세계에 끌어들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마르크스가 출간한 『자본론』(1867~1883 집필)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문을 연 역사적인 저서로 꼽힌다. 학자로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과 함께 현재 가장 영향 있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에밀 뒤르캥, 막스 베버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과학자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무신론자 구역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무덤과 두상. [위키피디아]

영국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무신론자 구역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무덤과 두상. [위키피디아]

 
마르크스의 학문은 19세기 철학·경제학·사회학·정치학·문학 등 각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 다양한 사상과 사고가 기틀을 제공했다. 그는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시대의 학문을 수용해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세웠다. 인간정신과 이성이 현실이 되어 역사를 만든다는 칸트·헤겔·쇼펜하우어 등의 관념주의 철학이 그 뼈대를 제공했다. 당시 생시몽 백작 클로드 앙리 드 르브루아를 비롯한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같은 무정부주의자는 ‘재산의 사회적 평등 없이 정치적 평등은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있는 자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정부를 폭력혁명을 통해 무력화할 것을 주장했다.  
 
베이징 도심의 신문화운동기념관으로 쓰이는 베이징대학 홍루에 마련된 ’불망초심-마르크스주의 중국 초기 전파 전시회“ 진열관 벽에 걸린 마르크스와 엥겔스 초상. [사진=신경진 기자]

베이징 도심의 신문화운동기념관으로 쓰이는 베이징대학 홍루에 마련된 ’불망초심-마르크스주의 중국 초기 전파 전시회“ 진열관 벽에 걸린 마르크스와 엥겔스 초상. [사진=신경진 기자]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경제학에서도 인식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데이비 『인구학』으로 유명한 토머스 맬서스를 비롯한 고전경제학자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였다. 문학도 인간 중심의 사고를 확산했다. 19세기는  『파우스트』를 쓴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스탕달과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 『전쟁과 평화』를 내놓은 러시아의 레흐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인본주의 작가의 시대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인 '자본'. 국내에선 '자본론'으로 번역됐다. 사진은 비봉출판사에서 번역한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인 '자본'. 국내에선 '자본론'으로 번역됐다. 사진은 비봉출판사에서 번역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살던 당시의 국제 사회는 산업생산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영국에 이어 독일과 미국,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이뤄졌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고 1871년에는 독일이 통일되고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제국이 들어섰다. 통일된 독일제국은 국력을 바탕으로 군국주의화로 나아갔다. 이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심각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선 산업 중심의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가 대립해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으며 1863년 노예 해방령이 이어졌다.러시아에선1861년 농노해방령이 내려졌다.  
카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 자필 원고. [위키피디아]

카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 자필 원고. [위키피디아]

 
이런 상황 속에서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싹이 트던 시기이기도 했다. 1811년 영국에선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졌다. 산업혁명 이후 최초의 노동자 생존운동으로 평가된다. 1825년에는 영국에서 최초의 자본주의 공황이 벌어져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줘다.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이 완성된 1864년에는 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제1 인터내셔널)가 창립됐으며 18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차 대회를 열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시에서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발행한 0유로짜리 기념 지폐. 3유로에 판매한다. [트리어시 홈페이지]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시에서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발행한 0유로짜리 기념 지폐. 3유로에 판매한다. [트리어시 홈페이지]

1871년에는 파리에서 노동자 봉기인 파리코뮨 사건이 발생했으며 러시아에선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를 내세운 나로드니키(인민주의) 운동이 시작됐다. 1875년에는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창당됐으며 1879년에는 스페인 사회노동자당이 설립됐다. 1899년에는 베른슈타인이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임무』를 발표하고 혁명 아닌 체제 내 개혁 강조한 수정마르크스주의를 제창했다. 1900년에는 영국 노동당이 창당됐고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던 1905년에는 프랑스에서 사회당의 전신인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가 결성됐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는 그야말로 혁명의 전야였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의 연설을 그린 프로파간다 그림.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자신의 생각을 보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소련의 지도 이념으로 내세웠다. [중앙포토]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의 연설을 그린 프로파간다 그림.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자신의 생각을 보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소련의 지도 이념으로 내세웠다. [중앙포토]

 
 
그 배경은 마르크스가 살아 있을 당시 영국에 이어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노동계급이 성장한 데 있다. 문제는 산업혁명으로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축적하며 날로 재산을 불렸지만, 임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되기만 했다는 점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영국에선 1833년에서야 영국 ‘공장입법’으로 9세 이하 어린이의 노동을 금지하고 14~18세 청소년은 하루 12시간 이하로만 노동할 수 있게 됐다. 그 이전에는 9세 이하의 어린이도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청소년 노동자까지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런 비참한 노동자들의 근로 상황에 지식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지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중앙포토]

카를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지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중앙포토]

마르크스는 산업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구석으로 몰리기만 하는 노동자들의 ‘소외’에 주목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생산방식과 생산력 같은 하부구조가 법과 제도, 정치, 철학, 사고방식 같은 상부구조를 좌우한다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제창했다. 그러면서 하부구조인 생산형태와 소유형태가 파괴되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는 역사발전론을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류사회가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사회와 봉건주의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는 계급혁명으로 붕괴하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자본가와 지주 계급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평등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러시아혁명의 현장. 당시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장대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중앙포토]

러시아혁명의 현장. 당시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장대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중앙포토]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과 혁명론은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 성숙국가를 모델로 했다. 하지만 실제 공산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미성숙국가였던 러시아에서 1917년 처음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20세기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됐다.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국제정세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레닌, 중국의 마오쩌둥,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등이 이를 추종하며 혁명이나 무장투쟁, 선거 등으로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를 실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쿠바혁명 등은 물론 중남미를 휩쓴 해방신학과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AALA)의 민족해방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냉전의 원인을 제공했다.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서방 진영은 6·25전쟁, 쿠바위기, 베트남전쟁 등을 통해 사사건건 맞섰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을 받았다. 한반도는 냉전 대결장이 됐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무시한 사회주의 경제 실험은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소련을 비롯한 고전적 사회주의 국가는 혁명을 통해 모든 사유재산을 몰수해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이를 국가가 운용하면서 중앙집권 경제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런 마르크스레닌주의 중앙집권 경제체제는 인간의 자발적인 경제활동을 억압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 소련은 엄청난 자원을 보유했음에도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으며 이는 국민을 불만과 냉소로 일관하게 했다. 경제난 속에서 소련은 1991년 몰락했고 고전적 사회주의 실험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소련의 정치적 압박과 영향으로 들어섰던 동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사회주의 정권은 이를 계기로 동반 몰락했다. 동유럽은 재빨리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경제적 발전을 도모했다.  
쿠바혁명의 두 주인공인 피델 카스트로(오른쪽)와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해 1959년 1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쿠바혁명의 두 주인공인 피델 카스트로(오른쪽)와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해 1959년 1월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민족해방투쟁과 결합한 사회주의 실험이 이뤄졌다. 49년에는 중국 본토에 공산정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으며 59년에는 쿠바 혁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공산정권이 수립됐다. 75년에는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공산화가 이뤄졌다. 이들은 소련처럼 체제 자체가 무너지는 대신 체제 내 경제 개혁을 도모하며 공산정권의 생존을 도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은 자원과 인력을 집중해 단번에 공업화를 이루려던 대약진운동(58~62)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2000만~4000만 명이 기아 등으로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극좌 정치투쟁인 문화대혁명(66~76)까지 이어져 경제와 사회가 피폐해졌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경제 발전에 나서면서 안정을 되찾고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 베트남도 86년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도입해 외자를 받아들여 경제 발전에 나섰다. 쿠바에선 2011년 공산당이 경제사회개혁방안을 발표하고 민박·택시·식당·소형건설업 등 180여 분야를 민영화하면서 경제개혁에 들어갔다. 2018년 판문점 회담에 이은 북한의 변화도 주목된다. 북한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나긴 여정에서 세계사적 종착역이 될 것인가.  
러시아에 드물게 남아있는 레닌 동상. [중앙포토]

러시아에 드물게 남아있는 레닌 동상. [중앙포토]

 
마르크스주의는 국가 경제 운용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이 나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이미 용도 폐기됐다. 하지만 그 생명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철학적으로 소외된 노동자를 역사발전 주체로 바라봤던 점은 여전히 평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소외는 자본주의가 아무리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져도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대적인 빈부 격차와 박탈감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소외된 계급이나 계층이 기득권층에 대해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때 내세우는 사회과학적인 틀로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게다가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할 때도 살펴볼 수밖에 없는 고전적인 ‘참고서’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는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실업, 갑질, 공황, 금융위기 등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경종으로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 전망이다. 이 시대 마르크스를 다시 부르자는 주장은 역사 망각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를 완전히 폐기하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만용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표)마르크스를 만든 19세기, 마르크스가 만든 20세기>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만든 18~19세기의 학문과 문학, 그리고 사회와 국제 정세를 간략하게 정리한다. 아울러 그가 20세기 세계에 미친 영향도 연표로 알아본다.    
 
1776 미국 독립혁명

1787 프랑스 혁명
1799 나폴레옹 쿠데타로 집권, 1804 황제 즉위
1807 독일 철학자 헤겔 『정신현상학』
1808 독일 작가 괴테 『파우스트』
1811 영국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노동자 생존운동)  
1812 헤겔 『대윤리학』/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1817 영국 고전파 경제학자 리카르도 『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8 카를 마르크스 탄생(5월 5일)
1819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20 고전경제학자 맬서스 『경제학원리』/ 프리드리히 엥겔스 탄생(11월 28일)
1821 헤겔 『법철학』
1823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 『산업자 교리문답』
1824 런던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 설립
1825 영국에서 최초의 자본주의 공황/ 독일 산업혁명
1830 프랑스 작가 스탕달 『적과 흑』/ 프랑스 7월혁명 루이 필립 국왕 즉위  
1832 괴테 『파우스트』제2부
1833 영국 ‘공장입법’으로 9세 이하 노동금지, 14~18 청소년 하루 12시간 노동제  
1835 프랑스 사회학자 토크빌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마르크스 본대학 법학부 입학
1836 미국 산업혁명/ 마르크스 본대학 수료하고 베를린대학 법학부 입학
1840 프랑스 무정부주의자 프루동 『재산이란 무엇인가』/ 아편전쟁 발발    
1841 마르크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 차이’ 논문으로 예나대학 철학박사 학위/ 독일 철학자로 유물론자인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독일 자유주의 경제학자 리스트 『국가경제학체계』
1842 마르크스 라인신문 근무/ 엥겔스와 첫 만남
1843 공리주의자 밀 『윤리학체계』/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마르크스 예니 베스트팔렌과 결혼/ 라인신문 폐간 / 마르크스 프랑스 파리로 이주    
1844 마르크스 ‘독불연보’ 창간
1845 마르크스와 엥겔스, 『신성가족』『독일 이데올로기』, 엥겔스『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마르크스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  
1846 무정부주의자 프루동 『빈곤의 철학』/ 미국-멕시코 전쟁
1847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프랑스어 출간/ 영국 ‘10시간 노동법’ 제정/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주의자 동맹 결성
1848 프랑스 2월혁명으로 왕정 붕괴하고 공화정/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 물결 나타나다 반동주의 강화/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당 선언’ 발표/ 밀 『경제학원리』/ 뉴욕 여성권리대회 / 마르크스 미국 일간지 뉴욕트리뷴 특파원 근무 시작(~1862)   
1849 마르크스 『임금노동과 자본』/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1850 마르크스 런던으로 이주
1852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나폴레옹 3세 황제 즉위해 제2 제정
1857 최초의 세계공황
1859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밀 『자유론』/ 다윈 『종의 기원』
1860 한계효용 이론 창시자 왈라스 『정치경제와 정의, 프루동 비판』  
1861 미국 남북전쟁/ 러시아 농노해방령/ 이탈리아 통일  
1862 위고 『레미제라블』휴머니즘 역설/ 런던 만국박람회 개최/ 프로이센, 비스마르크 집권  
1863 미국 노예해방선언
1864 마르크스 『자본』제1권 완성/ 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 창립
1866 국제노동자협회 제1차 대회(제네바)      
1867 마르크스 『자본』제1부 독일어 초판 발간(9월 14일)/파리 만국박람회
1869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완간
1871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 승리, 독일 통일하고 독일제국 건국/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 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코뮌 3월 수립, 5월 해체/ 러시아에서 브나나로(민중 속으로) 표방한 나로드니키(인민주의) 운동
1872 마르크스 『자본』독일어 제2판 발생/엥겔스 『주택문제』
1873 바쿠닌 『국가와 무정부』/ 경제공황
1875 마르크스 『독일노동자당 강령(고타 강령) 비판』/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 창당
1877 빅토리아 여왕, 인도 황제로 즉위
1878 독일 사회주의자단속법 반포
1881 마르크스 부인 예니와 사별  
1883 마르크스 별세,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안장
1884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발간
1885 마르크스 『자본』제2부 독일어판 초판 발간
1889 제2 인터내셔널 결성
1875 독일사회민주당 창당
1879 스페인 사회노동자당 창당
1894 마르크스 『자본』 제3부 독일어판 초판 발간
1895 엥겔스 별세
1899 베른슈타인,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임무』로 혁명 아닌 체제 내 개혁 강조한 수정마르크스주의 제창
1900 영국 노동당 창당
1905 1차 러시아 혁명/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프랑스 사회당 전신) 결성
1914 제1차 세계대전(~1918)
1917 러시아 2월혁명으로 제정 붕괴/ 10월혁명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 수립
1922 소련 정부 수립
1949 신중국(공산정권) 건국
1959 쿠바 혁명으로 일당독재체제   
1975 베트남 통일과 공산화  
1978 중국 개혁개방 시작
1986 베트남 도이모이(쇄신) 정책 시작
1990 독일 통일(10월 3일)
1991 소련 붕괴
2011 쿠바 경제사회개혁방안(180여 분야 민영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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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채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