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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들의 자기만족? tvN '나의 아저씨' 정말 위험한가

중앙일보 2018.05.02 07:05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사진 tvN]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사진 tvN]

 
그간 tvN '나의 아저씨' 만큼이나 논쟁적 드라마는 드물었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특히 롤리타 컴플렉스 논란으로 속앓이를 했던 가수 아이유이자 연기자 이지은) 캐스팅으로 방영 전부터 시작된 논란은, 방송 장면의 폭력성 논란까지 가세하며 드라마 중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거친 세상에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인생 드라마"라 치켜세우고, 다른 쪽에선 "나이 어린 여성을 통해 중년들이 자기 만족하는 동시에 폭력적인 드라마"라 혀를 내두른다. 그 사이 3.9%(닐슨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지난 26일 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tvN '나의 아저씨'는 정말 불편한 드라마일까. 3명의 평론가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성실한 무기징역수' 같은 도시인에 울림 있는 드라마"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거동이 불편한 지안의 할머니를 업고 있는 동훈 동훈과 지안은 서로를 도우며 의지한다. [사진 tvN]

거동이 불편한 지안의 할머니를 업고 있는 동훈 동훈과 지안은 서로를 도우며 의지한다. [사진 tvN]

나의 아저씨는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다. 삼 형제 중 제일 안정적 직업을 가진 둘째 박동훈(이선균 분)을 중심으로 한 가족애. 삼 형제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고, 형제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동훈이 지안(이지은 분)을 괴롭히는 사채업자에게 맞던 날, 동훈의 형과 아우는 동네 조기축구회 회원들까지 모두 동원해 동훈을 찾아 나섰다. 퇴직 후 사업도 잘되지 않는 큰형의 걱정은 언젠가 돌아가실 어머니 장례. 첫 작품 이후 20년째 고전 중인 영화감독 막내에게도 우선순위는 가족이다.
 
그렇게 혈연으로 이어진 사랑은 동훈에겐 불변의 가치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채업자에게 혹독하게 시달리는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 그 멍에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안을 동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식구 팬 새끼들은 다 죽여”란 동훈의 대사가 이를 말해준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가 주인공의 나이 차, 마음의 치유를 왜 어린 여자에게서 찾는 것으로 그렸을까 하는 우려가 후반으로 갈수록 씻겨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다.
 
인간 군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 또한 공감 폭을 넓혀준다. 다소는 과장되게 그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안을 비롯해 구겨진 자신을 다시 펴 놓으라고 소리치던 여배우, 회장 후계자가 되기 위해 싸우는 도준영(김영민 분)과 왕 전무(전국환 분), 그리고 박제된 도시 속 근로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들의 패거리들, 삼 형제의 아지트인 동네 술집 정희네 사장 정희(오나라 분)까지. 누구나 산다는 것은 상처 입고 그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과정임을 농밀하게 그려준다. 물론 지안에 대한 사채업자의 폭력은 과도하게 묘사됐지만 요즘 연인이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상상 이상의 폭력이 오가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폭력은 드라마의 장치 그 이상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성실한 무기징역수’ 같은 이 시대 도시인들의 한 단면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고, 지켜야 할 것은 가족이고, 배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믿음임을 ‘나의 아저씨’는 천천히 보여준다.
 
 
 "극사실적인 폭력 묘사, 종착지는 어디일까"
<윤석진 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학 교수)>
 사채업자 광일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 이지안 [사진 tvN]

사채업자 광일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 이지안 [사진 tvN]

삶은 언제나 치열하다. 현실 또한 그러하다. 특히 자본의 논리에 밀려 인간의 가치가 훼손된 현실에서는 어지간한 정신력 아니면 살아가기 버거운 것이 사실.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하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가들은 문제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한다. 문제적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으로 문제적 현실을 재구성해 경종을 울리며 변혁의 열망을 끌어낸다. 이른바 ‘명작’은 이렇게 탄생한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가운데 문제적 현실을 성찰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시청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주인공 박동훈과 이지안을 중심으로 '지옥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그동안 한국 드라마가 견지하던 판타지 로망에 균열을 일으킨다. 실제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극적 상황 묘사는 시청자들이 외면하고 싶었던 문제적 현실을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그악스럽게 살아가는 지안이 동년배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 분)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그랬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직장에서 떨려 나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저씨들의 비애가 그랬다.
 
'리얼리티 폭력'이라 할 정도로 문제적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나의 아저씨’가 판타지 로망에 충실한 한국 드라마에 충격파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추레한 현실을 드라마로 목격하는 것은 충격에 가깝고, 그만큼 한국 드라마의 지평은 확장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의 리얼리티에서 현실 변혁의 열망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박동훈과 이지안이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상황에서 감정의 울림이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문제적 현실이 개선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의 힘은 사실적 재연을 통한 공감이나 위로보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의지를 자각시킬 때 강렬해진다. ‘나의 아저씨’의 리얼리티가 문제적 현실 확인의 '폭력'인지, 아니면 문제적 현실 변혁의 '열망'인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재들을 위한 위무곡, 아재에게도 결례"
<이승한 TV평론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기훈과 유라. 유라는 자신을 구겨뜨린 기훈에게 "다시 펴달라"고 요구한다. 기훈은 그런 유라를 사랑하고 결국 둘은 연인이 된다. [사진 tvN]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기훈과 유라. 유라는 자신을 구겨뜨린 기훈에게 "다시 펴달라"고 요구한다. 기훈은 그런 유라를 사랑하고 결국 둘은 연인이 된다. [사진 tvN]

드라마 속 한 장면. 자신에게 연기 트라우마를 안겨준 감독 기훈(송새벽 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유라(권나라 분)는, 유라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 여기고 화를 내는 기훈에게 정색하며 말한다.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그게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됐어요.” 좋은 이야기다. 망가진 제 삶에 환멸을 느낄 때, 누구라도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자. 유라 인생이 망가진 건 연기를 못한다고 윽박질러 정신적 내상을 입힌 기훈 탓이다. 반면 기훈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밥을 해 줄 엄마와 힘들지만 함께 술잔을 기울일 형제와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도 기훈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일러주고 위로하는 건 유라 몫이 된다. 심지어 유라는 "당신 때문에 상처 입었으니 당신이 책임지라"며 기훈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기훈은 유라의 토사물을 치워주고 위로해주는 가디언이 된다. 주변에 인적 자원이 없는 것도 아닌 남성이 굳이 젊은 여성에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희한하지만, 심지어 그게 자신이 상처 입힌 상대이며 상대는 자신의 배려를 원한다니, 이 판타지가 위무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너무 투명하지 않나.
 
동훈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정희나 겸덕(박해준 분)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굳이 기댈 곳 하나 없는 어두운 과거의 소녀 가장 지안을 그에게 붙여주고, 그런 지안에게 사심 없이 잘 대해주는 동훈을 부각함으로써 동훈의 삶이 썩 괜찮은 것임을 증명하려 한다. '나의 아저씨'는 한사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를 그린다고 하지만, 그 위로의 모양새는 40대 남성들 곁에 더 상황이 안 좋아서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한 젊은 여성을 붙여주는 식이다. 중년 남성들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도 젊은 여성이 “망가져도 행복해 보인다”라고 이야기해줘야 행복을 느끼는 퇴행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젊은 여성들의 삶은 그 판타지를 위해 평면적으로 소비된다. 이쯤 되면 젊은 여성뿐 아니라 중년 남성에게도 결례 아닌가.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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