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산책] 깨어있는 고요, 투명한 앎

중앙일보 2018.05.02 01:12 종합 28면 지면보기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따뜻한 봄날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수행처를 찾았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은 몸과 마음에 보약이 된다. 특히 깊은 침묵과 만나는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왜냐면 우리 본성은 완전히 멈추었을 때 비로소 깨어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5월을 맞아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행처에서 마음 공부에 관한 글을 모처럼 적어본다.
 

침묵은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앎의 공간’
부디 고요 속에서 깨어있는 투명한 앎과 만나시길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생각과 느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그런데 생각과 느낌은 비교적 쉽게 알아차리지만,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다음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있는 고요함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즉 생각과 생각 사이, 느낌과 느낌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한 침묵이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은 그 빈 공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왜냐하면 생각이나 느낌과는 달리 고요한 침묵은 아무런 모양이 없기 때문에 쉽게 잡히지도 어느 한 곳에 집중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침묵과는 반대로 생각과 느낌은 형태가 있어 비교적 쉽게 관찰된다. 이내 우리는 올라온 생각과 느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해버리는데 그래서 ‘내 생각’, ‘내 느낌’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것들에 집착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고 싶은 질문이 생긴다. 만약 진짜로 생각과 느낌이 ‘나’라고 한다면 그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가? 시간이 지나 그 생각과 느낌이 사라질 때도, 그것들이 실제로 ‘나’였다면 ‘나’라는 존재의 일부분도 생각과 느낌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야 하는데, 실제로 내가 사라지는가?
 
우리는 생각과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멀쩡하니 계속 존재한다. 즉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구름처럼 잠시 일어났던 것이지 근원적 존재의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나 느낌보다 훨씬 이전부터 항상 있어 온 ‘나’는 무엇일까? 사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수많은 수행자들이 생각을 완전히 멈추려고 각종 명상과 화두 참선을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찾아내야 하지만 혹여 나의 몇 마디가 누군가에겐 경험의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부족하지만 나누고 싶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있었고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결같이 있는 것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이 살아서 아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생각이나 느낌도 고요한 침묵에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시간이 지나면 침묵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침묵은 텅 비고 의미 없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그 공간을 제공하고, 사라지려고 하면 품어서 소멸하게 하는 자애롭고도 살아있는 ‘앎의 공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침묵과 앎이 둘이 아니고 완전히 하나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침묵이 살아서 아는 것이다. 고요한 침묵이 어떤 대상을 만나면 앎으로 변해서 그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알 대상이 없을 때는 침묵의 상태로 지극히 평화롭다. 뒤집어 말하면 대상을 떠난 앎 자체는 아무런 모양이 없다. 왜냐면 모양이 없는 침묵이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고요한 침묵의 위치를 살펴보자. 우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요한 침묵을 느껴보자. 이 고요함은 몸 안에만 있는가, 아니면 몸 밖에도 있는가? 몸 안에 있는 침묵과 몸 밖에 있는 침묵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런 구분 없이 하나의 침묵만 자리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앎의 위치에서 물으면, 몸 안에 배고픔을 아는 앎과 몸 밖에 새소리를 아는 앎 사이에 어떤 막이 있어 그 둘을 안과 밖으로 나누는가, 아니면 그런 막이 없이 하나로 연결된 동일한 의식 공간 안에서 두 가지 앎이 일어나는가?
 
이번엔 침묵의 끝을 찾아보자. 침묵의 끝이나 가장자리를 찾을 수 있는가? 아니면 끝을 알 수 없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알 때 그 아는 앎에 가장자리가 있는가? 예를 들면, 밤하늘을 보면서 어디까지만 알고 어디부터는 별이 있다는 앎이 멈추는 가장자리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침묵이나 앎을 잃어버리거나 완전히 깨뜨려 없앨 수가 있는가? 앎이 일어나는 것을 마음대로 한번 멈추게 하거나 남이 빼앗아 갈 수가 있는지 확인해보라.
 
금강석처럼 투명하면서도 깨질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고요한 앎이 끝없는 우주만큼 가득하다. 부디 고요 속에서 깨어있는 투명한 앎과 만나시길 기원한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