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반도체 혁명 시기를 한국 정부만 모르는 건가

중앙일보 2018.05.02 01:09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기술을 ABCD로 설명할 수 있다. A는 인공지능을 표현하는 AI, B는 블록체인, C는 클라우드 컴퓨팅, D는 빅데이터를 상징한다. 다르게 설명하면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처리해서 인간의 두뇌보다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판단하고 예측해 결국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가 대체하는 세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을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대단히 위협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ABCD 분야의 신산업과 벤처기업 일자리가 창출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국·미국 등 반도체 경쟁 치열
관련 기업 정보가 국가경쟁력
제3자에 기업정보 공개 안돼야

그런데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반이 되는 부품이 바로 실리콘 반도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데이터를 저장하고 인공지능 서버의 성능을 좌우하는 D램과 낸드 플래시 반도체 메모리가 가장 핵심 부품이다. 이러한 실리콘 기반 반도체 메모리를 만드는 공정 작업은 원자 수준의 3차원 사진 판화 예술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 공정에서는 평평한 실리콘 반도체 기판 위에 극자외선을 이용한 사진 작업을 하는데, 이를 위해 감광 물질을 표면에 바르고 광 마스크를 이용해 설계 패턴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일종의 빛을 이용한 판화 과정이다.
 
이러한 판화 작업 중에 실리콘 반도체 표면을 깎고 일부러 이물질을 주입하고 절연 물질을 입히고 열처리를 하며 금속 배선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반도체 칩 하나에 수억 개 또는 수조 개의 트랜지스터와 전자 저장 장치, 연결 배선을 구현한다. 이 트랜지스터들이 서로 수없이 연결돼 메모리도 되고 인공지능 프로세서도 된다. 이 과정에서 수십장의 사진 작업용 광 마스크가 사용되고 1000여 개의 물리·화학·재료 공정이 필요하게 된다. 이 작업에는 감광물질·세정액 같은 액체를 이용하기도 하고 기체의 방전을 이용한 진공 플라스마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때 패턴의 선 폭이 10나노 미터까지 내려가기도 하는데, 그 패턴의 크기가 마침내 원자 수십 개가 배열된 정도 수준이 된다.
 
그러니 반도체 메모리 공정은 원자 단위의 3차원 예술이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D램의 경우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 커패시터(capacitor·축전기)에 전자를 담아 두는 것인데, 점점 더 작은 나노 크기의 3차원 공간에 더 많은 수의 전자를 저장하기 위해서 커패시터가 수직적인 3차원 구조를 가진다. 원자 수준에 가까운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시론 5/2

시론 5/2

이러한 공정에 필요한 물질의 공급회사·성분·점도·두께 등 공정 정보 하나하나가 제품의 수율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D램 커패시터나 트랜지스터 관련 공정과 물질은 수율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공정 순서와 물질 설계에 따라 절연막이 불균일해지거나, 부분 절연 파괴가 일어나면 전류 누설 현상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그 반도체는 전자를 저장할 수 없게 되고 이후 테스트 과정을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난이도는 패턴의 크기가 나노 미터 크기의 영역으로 내려가면서 더욱 더 높아진다. 세정 물질 하나 잘못 선택해서 제품 수율이 떨어지면 다시 올리기 위해 6개월 혹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용되는 화학 물질이나 기체의 양을 통해서 그 물질이 양산 단계에서 사용하는지, 아직 개발 단계인지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 정보와 공장 구조도, 장비 배치도는 그 회사의 생산 비밀과 계획 그리고 전략을 유추하는 실마리가 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앞으로 10년 이내에 전 세계 반도체 메모리 시장 규모가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때 한국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메모리 생산 규모는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지금과 같이 40% 내외의 이익이 남는다고 하면 그 이익 규모가 400조원에 이른다. 그 규모는 올해 전체 정부 예산(418조원)과 비슷하게 된다.
 
최근 중국도 반도체 메모리의 중요성과 시장 크기를 파악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미국 인텔도 기존의 반도체 메모리 시장을 교란하기 위해서 크로스포인트(X-point)라 불리는 신규 메모리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반도체 메모리 전쟁 시대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질로 인한 위험에 노출된 근로자의 건강과 인권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 건강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따라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원인이 밝혀지면 적극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과 생존이 달린 반도체 공정과 관련된 귀중한 국내 기업 정보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상황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매우 현명한 판단과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