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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정부 상대 ISD 추진 … “기업 사냥 개입 말라는 신호”

중앙일보 2018.05.02 00:53 종합 2면 지면보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추진하는 것이 1일 확인됐다. 합병 찬성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국민연금공단 때문에 당시 합병에 반대한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 제도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국제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다.
 

“현대차·모비스 합병하라” 압박 중
3년 전 삼성합병 중재의향서 제출
“ISD 자체보다 한국기업 압박 목적”
김상조는 현대차 합병 부정적 의견

엘리엇은 이런 내용을 담은 중재의향서를 지난달 13일 법무부에 제출했다. 중재의향서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기 전 한국 정부가 중재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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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에 엘리엇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엘리엇은 2015년 6월 합병을 결정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 달라고 가처분 신청 등을 냈지만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며 특검은 국민연금이 직권을 남용해 합병에 찬성했다고 판단했고, 법원은 1심·2심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업무상 배임죄)했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엘리엇이 ISD에 나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결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기업의 법무 담당 임원은 “2015년 합병이 진행된 시기는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던 때”라며 “주가 하락이 합병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엘리엇이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치고 들어갈 우리 정부의 ‘약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 ‘앞으로 있을 한국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에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라’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기업의 일에 정부가 함부로 개입했다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엘리엇의 제안은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제안”이라며 현대차를 두둔하는 듯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인 LK투자파트너스의 강성부 대표는 “35년간 연 평균 2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엘리엇이 ISD를 통해 얻는 실익은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비용을 고려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며 “다른 곳에 투자해 얻는 이익이 더 큰데도 ISD를 감행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엘리엇이 노리는 한국 기업은 삼성·현대차만이 아니다”며 “지배구조 개편, 주주 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한국 기업을 압박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정부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 측은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각종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합병 적절성 논란이 다시 불거진 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엘리엇의 중재에 응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엘리엇은 3개월 후인 7월부터 한국 정부에 대한 제소가 가능하다. 정부는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등과도 중재 없이 ISD에 들어갔다.
 
법무부 관계자는 “만약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어떤 손해를 끼쳤는지 명확하게 입증돼야 하는데 중재의향서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손해용·정진우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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