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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주제가 사라진 야구장

중앙일보 2018.05.02 00:02 경제 10면 지면보기
프로야구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신나는 음악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선수 등장곡이 사라진다. [뉴스1]

프로야구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신나는 음악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선수 등장곡이 사라진다. [뉴스1]

당분간 야구장이 조용해질 것 같다. 10개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응원가(선수 등장곡) 사용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KBO는 지난달 30일 “최근 일부 원작자들이 야구단에 제기한 응원가 저작인격권 관련 소송에 KBO와 10개 구단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며 “선수 등장곡 사용을 5월 1일부터 전 구단이 잠정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프로구단, 저작인격권 소송에 대응
구단들, 선수 등장곡 사용 잠정중단
팬들 “야구 보는 재미 훨씬 떨어져”

프로야구 응원가에 대한 저작인격권 침해 논란은 2016년 중반부터 불거졌다. 저작권법 제10조 제1항에 따르면, 저작자(원작자)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갖고 있다. 저작재산권이란 저작물의 이용에 관한 권리이고, 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자기의 저작물에 대하여 가지는 인격적·정신적 권리를 말한다. 저작인격권은 공표권(제11조), 성명표시권(제12조), 동일성유지권(제13조)으로 분류된다. 프로야구 응원가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바로 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한 사항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이 원형 그대로 존재해야 하고, 제 3자에 의한 무단 변경·삭제·개변 등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저작권자에게 보장되는 권리다.
 
KBO와 10개 구단은 저작재산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KBO는 “응원가 음원에 대한 저작권료를 2003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내고 있으며, 2011년부터는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한국음반산업협회에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10개 구단은 연간 수천만 원의 저작권 사용료를 KBO의 마케팅부문 자회사 KBOP를 통해 지불하고 있다.
 
법무법인 월드의 김규엽 변호사는 “KBO가 저작권 사용료로 지불한 돈은 저작재산권에 한정된 것이다. 이번 논란은 저작인격권에 해당하는 동일성유지권에 대해서는 정당한 사용료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자들은 지난해부터 법무 대리인을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일부 구단에 소송 제기 가능성을 뜻하는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10개 구단 마케팅 팀장들은 지난 1월 문제 해결을 논의하고자 한자리에 모였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1명의 작사, 작곡가들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공동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유명 작곡가도 이 소송에 참여했다. 문제가 커지자 KBO와 구단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해 아예 응원가를 새로 제작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27곡 가운데 26곡을 바꿨다. 클래식이나 민요 등 원작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한 곡을 주로 이용했다. 일부 곡은 원저작권자와 협상에 성공해 시즌 후반에 다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응원가 교체 과정에서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올해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 등도 법적 논란을 피하고자 응원가를 새로 제작했다.
 
일부 저작권자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저작인격권에 대한 인식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당장 응원가 사용이 중단되면서 야구팬들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야구팬 정지훈(48)씨는 “응원가는 한국의 독특한 야구장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에 휘말려 경기장에서 응원가를 부를 수 없다면 야구를 보는 재미가 훨씬 떨어질 것”이라며 “저작권은 마땅히 존중해야 하지만 프로야구 관계자들과 원작자들이 열린 자세로 협상을 해서 슬기롭게 이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응원가의 저작권 논란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해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김규엽 변호사는 "동일성유지권을 2차적저작물의 개념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2차적저작물이란 원저작물을 기초로 이를 변형하여 새로운 저작물이 창작된 경우에 그 새로운 저작물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는 것은 저작재산권의 하나"라며 "응원가를 2차적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할 때, 이 경우 저작인격권의 일종인 동일성유지권의 침해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고, 논쟁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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