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호화폐 성지(聖地)로 떠오른 에스토니아를 가다

중앙일보 2018.04.30 15:59
에스토니아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각국 암호화폐 기업의 진출이 늘고 있다. 사진은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타이토스 제공]

에스토니아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 각국 암호화폐 기업의 진출이 늘고 있다. 사진은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타이토스 제공]

 # 에스토니아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직장인 이주연씨는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여행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여행 기간 5일, 예산 1000유로를 입력하니 비행기 표와 호텔, 교통수단, 관광지, 맛집까지 추천해줬다. 이씨는 AI 앱이 알려준 대로 여행 일정을 짰다. 
 

올 들어 한국 암호화폐 기업 30여곳 ICO 준비
여행 전문 암호화폐 기업 타이토스 9월 말 상장
기술력·시장성·팀워크 겸비한 기업 골라 투자해야

호텔비 결제는 이씨의 코인지갑(wallet)에 있는 코인을 호텔로 송금해 해결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후 영수증을 받았다. “코인으로 결제하면 음식값 5%를 할인해준다”라는 직원의 말에 이씨는 바로 코인지갑 앱을 켜서 결제했다. 식료품 매장에 들려 5유로어치의 간식거리를 산 그는 역시 코인으로 계산했다. 이씨는 “성향과 예산을 반영해 맞춤형 여행 일정을 짜주고, 현금을 챙기지 않아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여행 전문 암호화폐 기업인 타이토스는 내년 2월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 ‘타이요’ 서비스를 선보인다. 타이요는 인공지능(AI)과 독자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여행 플랫폼이다. 타이요 서비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소비자의 성향과 예산을 타이요에 입력하면, 타이요는 이에 맞게 여행 코스를 추천해준다. 여행 비용은 이 회사의 암호화폐인 타이토스로 결제하면 된다. 타이토스는 지난 2월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설립했다. 플랫폼 구축을 위해 탈린공대 알렉스 노타 교수와 유럽 3대 블록체인 포럼 주최사인 문테크와 함께 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는 최근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암호화폐 사업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세계에서 선두권의 나라다. 2007년 러시아로부터 디도스 공격을 받은 후 일찌감치 보안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게 계기였다. 
 
2008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한 후  2012년부터는 입법·사업·행정 등 정부 업무 영역 전체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확대했다. 오트 바테르 이레지던시 사무국장은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어 암호화폐공개(ICO)를 위한 거래소 상장, 비즈니스 생태계가 발달해 있다”며 “에스토니아에 진출한 기업 23곳 중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ICO는 블록체인·암호화폐 기업이 새로운 암호화폐를 발행해 투자 자금을 모집하는 걸 말한다.  
  
에스토니아의 사업환경도 매력적이다. 0%인 법인세율(이익을 배당할 때만 20% 세율로 과세)과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인 이레지던시(e-Residency)의 영향이 크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2014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전자시민권은 온라인으로 신청한 후, 100유로만 내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다. 
 
시민권을 받으면 온라인으로 창업할 수 있고, 에스토니아에 머물지 않아도 행정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에스토니아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매력적인 이유다. 오트 사무국장은 “한국을 포함한 154개국에서 3만여 명이 시민권을 받았다”며 “이들 중 5000여 명이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탈린공과대학은 대학생들이 창업할 수 있는 공간과 멘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전화로 널리 알려진 스카이프는 에스토니아 창업 열풍의 시발점이자 최고의 성공사례다. [타이토스 제공]

에스토니아 탈린공과대학은 대학생들이 창업할 수 있는 공간과 멘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전화로 널리 알려진 스카이프는 에스토니아 창업 열풍의 시발점이자 최고의 성공사례다. [타이토스 제공]

 업계에 따르면 현재 30여개의 암호화폐 기업이 에스토니아에서 ICO를 준비하고 있다. 
 
에드워드 권 타이토스 대표는 “처음에는 벨라루스를 검토했지만 에스토니아가 ICO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인 데다 세금도 저렴해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타이토스는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기반 암호화폐 사용 패턴 분석 및 서비스 장치 및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특허청에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특허출원 신청을 준비 중이다. 
 
타이토스의 어드바이저로 참여한 노타 교수는 “ 타이토스의 플랫폼은 AI 기술이 있고, 여행시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암호화폐 퀀텀(QTUM)의 어드바이저로도 참여한 바 있다.
 
타이토스는 4월 30일부터 5월 12일까지 1차 프리세일(Pre-Sale, 사전 판매)에 들어간다. 1차는 한국을 포함해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실시한다. 2차(6월 4~6월 17일) 프리세일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행할 계획이다. 오는 9월 중 ICO를 진행할 예정이다.  
  
유럽 3대 블록체인 포럼 주체사인 문테크의 공동대표인 예브게니(왼쪽 첫번째)와 쿠즈네초브(왼쪽 다섯번째)는 타이토스의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고 있다. 왼쪽 세번째는 에드워드 권 타이토스 대표. [타이토스 제공]

유럽 3대 블록체인 포럼 주체사인 문테크의 공동대표인 예브게니(왼쪽 첫번째)와 쿠즈네초브(왼쪽 다섯번째)는 타이토스의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고 있다. 왼쪽 세번째는 에드워드 권 타이토스 대표. [타이토스 제공]

쿠즈네초브 문테크 대표는 “지금까지 블록체인은 기술을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AI 로봇과 얼마나 융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이 만나면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지난해 초 177억 달러(약 19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2374억 달러(약 260조원)로 급증했다. 오는 2027년이면 암호화폐 시장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암호화폐 기업도 우후죽순 늘고 있다. 
 
탈린공대 알렉스 노타 교수

탈린공대 알렉스 노타 교수

이런 가운데 스캠(사기)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에스토니아에서 한국 암호화폐 기업이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돈을 모은 후 기술 개발을 하지 않고 사라지는 ICO 사기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할까.  노타 교수의 답은 간단했다. 기술력·시장성·팀워크를 갖춘 기업이다. 그는 “관련 기업의 백서를 읽다 보면 기술 없이 ICO만을 하기 위해 급조한 흔적이 있다”며 “성장성이 있는 기업을 선별해 투자자에게 좋은 투자처를 제공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탈린(에스토니아)=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