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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비핵화 담판' 공 떠안은 트럼프의 수는?

중앙일보 2018.04.29 15:5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 주 워싱턴 타운십 스포츠 센터에서 연설을 갖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 주 워싱턴 타운십 스포츠 센터에서 연설을 갖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미시간주 마콤카운티의 유세장.

남북정상회담 결과 트럼프는 환영, 미 정부에선 씁쓸
미국의 일괄타결 대 북한의 단계적 접근 절충안 모색
시한 엄수, 사후 확인을 조건부로 체제보장안 내놓을 수도

갑자기 청중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노벨, 노벨, 노벨"을 외치기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을 뜻하는 말이었다. 
 
유세에 나선 트럼프가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관련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알린 뒤 "3~4개월 전만 해도 (북한과는) 매우 거친(rough) 상황이었음을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하자 터져나온 연호였다. 트럼프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잠시 연설을 멈췄다. 연호는 더 커지며 20초 가량 계속됐다. 그리곤 "멋지네요. 땡큐!"라고 했다. 
 
이후 발언은 '북한 변화=내 덕분'이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북한은) 3~4개월 전만 해도 핵전쟁을 일으킬 뻔 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모든 공을 나에게 돌렸다", "솔직히 (평창)올림픽에 많은 사람이 안 갔을텐데 북한이 참석하게 되면서 많은 이들이 가고 대성공하게 됐다"는 말도 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세기의 담판'으로 몰고 가는 한편, 회담 또한 '과시할 수 있는 결과'에 집착할 것이라는 걸 예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세차례 연속해 외쳤다. 북·미정상회담의 시기에 대해서도 이날 "향후 3~4주내에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회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미국과 북한)는 매우 잘 하고 있고, 아주 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27일 북·미정상회담 개최장소에 대해 "두 곳으로 좁혔다"고 확인했다. 두 곳은 몽골·싱가포르(중앙일보 25일자 1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은 싱가포르 개최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29일 오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29일 오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시기, 장소 등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 로드맵 부분을 북·미정상회담의 몫으로 돌리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고무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론과는 달리 "다소 미흡했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비핵화 부분에서 '남과 북은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라고 한 건 잘못됐다"며 "최소한 '추진하기로 했다'는 정도는 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판문점 선언문을 보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달 북한에 특사로 다녀온 뒤 백악관에 와 브리핑한 내용에서 더 나가지 못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당시 남북 간에 오간 내용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대북 특사단장이었고 미국과의 창구이기도 한 정의용 실장이 남북정상회담 오전 회의에 배석하지 못한 데 대한 의문도 미국 측에서 나온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뒤 박수를 치고 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뒤 박수를 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든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일괄 타결과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접근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인데, 사전 회담 성격인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성과는 거의 없었다는 아쉬움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NYT는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일정을 설정하지 않아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면한 도전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건 크게 두가지. 하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달성이고, 또 하나는 그 시한을 6개월~1년으로 못박겠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동결과 감축, 폐기 식으로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매 단계마다 제재해제, 평화협정 체결, 국교정상화 등 보상을 얻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서로 "우리가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절충안을 모색할 것이란 분석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즉 양측이 향후 수순을 담은 '비핵화 로드맵'을 '큰 틀'에서 합의하고 그 시한을 1년 정도로 단축하는 선물을 트럼프에게 주는 대신 핵 동결, 핵 시설 신고, 사찰 및 검증, 폐기의 각 단계마다 북한에 체제 보장을 위한 각종 조치를 김정은에 안기는 이른바 '절충형 빅딜'을 모색할 것이란 이야기다. 다만 트럼프로선 "25년 간 계속 속아온 것처럼은 안 하겠다"고 공언해 온 만큼 매 단계의 비핵화 조치가 확인될 경우, 그것도 설정한 시한 내에 할 경우에 한해 사후적으로 각종 보상을 이행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난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게 해냈다"고 업적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으로선 '일단 합의'로 이끌기 위해 트럼프가 가장 중시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를 '1차 선물'로 약속하는 방안도 거론할 공산이 있다.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 "김 위원장은 우리가 비핵화를 달성하도록 지도를 펼쳐줄 준비가 돼있다. 난 (평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게 맡긴 임무를 전달했고, 김 위원장은 이를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뭔가를 양보하지 않으면 회담이 실패하고, 그렇게 되면 서로가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점점 자각해가고 있는 분위기다. 회담 시기를 3~4주 내로 못박은 것도 그런 공감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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