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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기쁘면 필요 없어도 수백만원짜리 '턱턱'…'가심비' 바람

중앙일보 2018.04.29 00:01
2세 아들이 있는 이 모(36) 씨는 얼마 전 500만원을 주고 빔 프로젝터를 샀다.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느라 여가 생활이 없는 아내와 자신을 위해서다. 54인치 고화질 TV가 집에 있지만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이 씨는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짬을 일주일에 한 번도 내기 어렵지만, 언제든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비용으로만 따지면 영화관에 수백번 갈 수 있는 돈을 썼지만 구매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격 200만원 넘는 빔 프로젝터 시장 급성장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이 가전 시장에도 스며들고 있다. 지난해까지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진 ‘가성비’를 중시했다면 요즘은 가격 대비 만족감을 따지는 ‘가심비’에 끌리는 수요가 늘고 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것이다.
LG 시네빔 레이저 4K.

LG 시네빔 레이저 4K.

그러다 보니 여가를 위한 가전 시장이 확 커졌다. 빔 프로젝터가 대표적이다. 시장조사기관인 PMA는 고화질(4K급)의 빔 프로젝터 시장 규모가 지난해 9만 대에서 올해 21만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에는 올해보다 8배 이상 늘어난 183만대로 예상했다. 이전까지 빔 프로젝터는 캠핑 등 야외에서 쓰는 소형이 대부분이었고, 화질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TV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고화질 제품이 인기다. 가격도 평균 200만원이 넘는다.
 LG 시네빔 레이저 4K.

LG 시네빔 레이저 4K.

업체들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초고화질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LG전자는 다음 달 4K UHD 화질 ‘LG 시네빔 레이저 4K’를 출시한다. 대각선 길이가 150인치다. LG전자 한국 HE 마케팅 손대기 담당은 “영화관처럼 크고 선명한 화면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며 “더 진화하고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벤큐도 지난 2월 4K UHD 해상도의 가정용 빔 프로젝터 ‘W1700’을 출시했다.  
 
액션캠, 인테리어 소품도 '가심비' 부각되며 불티 
신체나 장비 등에 부착한 상태에서 촬영할 수 있는 액션캠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2년 6000대 규모에서 지난해 5만7000대로 확대됐다. 고프로는 이달 초 2K 동영상, 1000만 화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액션 캠 ‘히어로’를 출시했다. 샤오미는 다음 달 800만 화소에 무게 99g인 액션 캠을 국내 출시한다.
스메그 음료수 냉장고.

스메그 음료수 냉장고.

독특한 디자인의 소형 가전을 인테리어용으로 사기도 한다. 집에 대한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바뀌면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20조원 수준이다. 
 
'없어도 되지만 예뻐서 사는' 대표적인 제품은 음료수나 화장품 전용 냉장고 등이 있다. 스메그가 내놓은 음료수 전용 냉장고인 ‘SMEG 500’은 자동차 앞 부분 모양으로 디자인 됐다. 1500만원의 고가이지만 전년 대비 지난해 매출은 30% 이상 늘었다. 스메그 관계자는 “건축가가 디자인에 참여해 하나의 인테리어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용기기 업체인 위드뷰티는 다음 달 원통 모양의 화장품 전용 냉장고를 출시할 예정이다. 클림트의 미술 작품을 디자인에 반영한다.
위드뷰티 화장품 냉장고.

위드뷰티 화장품 냉장고.

이외에도 '성능이 만족스럽다'는 이유로 고가의 가전이 잘 팔린다. 일반 토스터기의 3~5배 가격인 발뮤다 토스터기(30만원대)는 '죽은(딱딱한) 빵도 촉촉하게 살려낸다'는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이마트몰에서만 전년 대비 5배가 넘게 팔렸다.
 
다이슨 헤어 드라이기(50만원대)도 일반 헤어 드라이기보다 10배 가까이 비싸지만 '모발 손상 없이 빨리 마른다'는 평을 받으며 매출이 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소형 가전은 대형 가전보다 가격 부담이나 공간의 제약이 없어 손쉽게 접근한다"며 "내가 만족하면 별다른 구애 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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