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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미술관 ‘간송’ 첫 나들이 … 전성우의 결단 덕

중앙선데이 2018.04.28 01:51 581호 24면 지면보기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2013년 8월 8일, DDP에서 공동전시 협약을 체결할 당시의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중앙포토]

2013년 8월 8일, DDP에서 공동전시 협약을 체결할 당시의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중앙포토]

만석꾼 전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모은 아버지, 그 수집품을 목숨처럼 지킨 아들이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창립자인 간송(澗松) 전형필(1906~62)과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전성우(1934~2018)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되는 한민족의 유물을 독립운동하듯 보호한 아버지를 우러르며 아들은 말했다. “저는 창고지기일 뿐입니다.” 1938년 한국 최초 사립박물관으로 세워진 간송미술관 80년 역사는 가문에 주어진 책임을 다한 희귀한 예다.
 
지난 6일 타계한 전성우 이사장은 간송 컬렉션의 보존과 더불어 나눔에도 생각이 깊었다. 1년에 두 번, 5월과 10월에 2주씩 소장품을 무료로 선보이는 외에는 일절 문을 닫아걸고 연구에만 충실했던 간송미술관이 대변혁을 일군 게 그의 결단 덕이었다. 전 이사장은 2013년 8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와 손잡고 외부 기획전을 연다는 공동전시협약을 백종원(1956~2015) 당시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와 맺었다. 은둔의 미술관이 76년 만에 첫 외출한다는 희소식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DDP는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의 독특한 설계로 화제가 됐지만 콘텐트 없이 건물만 짓던 처지였다. 개관을 앞두고 불면의 나날을 보내던 백 대표는 간송 컬렉션의 유치를 소망하며 전 이사장에게 한 번 뵙기를 청했다. 그 무렵 서울디자인재단의 전시본부장으로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 연구소장은 “놀랍고 감동스러웠다”고 회고했다. DDP에 간송미술관을 유치하는 조건이 복잡하고 까다로울 줄 알고 긴장했는데 정작 전 이사장은 발문(發問)에 가까운 단 두 개 질문으로 면접을 끝냈기 때문이다.
 
첫째는 “왜 간송이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다른 박물관도 많지 않으냐”였다. 백 대표의 답변은 간절했다. “간송 소장품은 창조의 원형이다. 화가·서예가·공예가 같은 창조자들이 어떻게 고심하고 손을 부렸는지를 잘 보여 준다. 창조의 시대, 창조의 허브를 꿈꾸는 DDP는 한국 창조문화의 맥을 보여 주고자 한다. 『훈민정음』 원본 하나만 와도 DDP의 백년대계를 잡을 수 있다.”
 
둘째는 “자하 하디드란 외국인이 만든 건축물 DDP와 한국의 정신문화인 간송 컬렉션이 어울리느냐”는 것이었다. 백 대표는 하디드가 여성 건축가임을 빗대 신사임당을 비유했다. “하디드는 건물을 넘어 건축을 짓는 사람이고, 간송 소장품 작가 중 한 명인 사임당은 묵도(墨圖)를 넘어 묵도(默道)하는 사람이다. 대비되지만 상보(相補)하는 점이 많다. 간송 컬렉션과 자하 건축물은 과거 한국미와 미래 세계문화를 융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어울림이다. 간송은 그런 콘텐츠이고 DDP는 그런 컨테이너다.” 전 이사장은 “난 간송 유산 창고지기인데 DDP가 우리 문화를 담는 큰 집이면 우리 국민에게도 참 좋은 것이겠지”라는 한마디로 허락 의사를 표했다.
 
이제 간송 컬렉션의 미래는 3대 손자들 손에 넘겨졌다. 할아버지의 초심(初心)을 항심(恒心)으로 지킨 아버지의 뒤를 잇는 그들에게 ‘문화재 신’의 가호가 있기를.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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