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후남의 영화몽상] 쉿! 목소리를 낮추세요

중앙일보 2018.04.27 01:35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소리에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거리의 자동차 소음이든, 집안의 층간 소음이든 원치 않는 소리에 수시로 시달리기 때문이다.  
 
사람 목소리도 예외가 아니다. 집안 식구의 애정 어린 잔소리도 과하면 소음 덩어리로 들리게 마련. 성격 뒤틀린 직장 상사나 갑질이 체질인 사람의 무차별 폭언은 말할 것도 없다. 여러 보도에 공개된 대로, 대기업 일가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고함과 욕설을 담은 음성 파일은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기괴하고 끔찍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이런 점에서도 설정이 흥미로운 영화다. 이달 초 국내 개봉한 이 미국 공포영화에선 누구든 조금만 큰 소리를 냈다가는 삽시간에 괴물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한창 시끄럽게 뛰놀 아이들도 살아남으려면 발소리마저 죽여야 한다. 심지어 아기를 낳는 산모도 스스로 입을 막고 비명을 참아야 한다.
 
영화몽상 4/27

영화몽상 4/27

공포영화에 흔히 나오는 손톱 긁는 소리 같은 것에 질색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저절로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다. 누군가 선반에서 물건을 내리는 일상적 동작만 해도 혹시 떨어트려 큰 소리가 나지 않을까 긴장이 고조된다.  
 
아예 소리가 없는 듯한 장면도 있다. 주인공 부부의 자녀 가운데 청각장애를 지닌 어린 딸의 관점에서 세상을 묘사할 때다. 이를 연기한 밀레센트 시몬즈는 실제 청각장애를 지닌 신예 배우다. 고집 센 딸을 연기하는 모습은 단연 인상적이다.
 
배우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한껏 소리를 질러야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니다.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을 받은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가 가까운 예다. 극 중 배경인 1920년대 말~30년대 초는 토키(talkie), 곧 ‘말하는 영화’가 등장해 할리우드 판도를 크게 바꾼 시기. 톱스타였던 주인공은 유성영화를 외면하다 점차 몰락하게 된다. 그 시절 무성영화 기법대로, 이 영화에는 배우들 목소리나 각종 음향효과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연을 맡은 장 뒤자르뎅은 아카데미 시상식과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고루 거머쥐었다. 마지막 한 장면을 빼면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고도 말이다.
 
일상의 소통에서도 목청을 높이는 게 결코 능사가 아니다. ‘목소리 큰 사람’, 안 그래도 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