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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교육부 돈줄 앞에 마비된 대학의 지성

중앙일보 2018.04.27 01:33 종합 32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드루킹 게이트’는 교육부에 천군만마가 됐다. 대입 혼선 등 잇따른 정책 실패로 부처 폐지론까지 나오던 차에 두 빅 이슈가 은신처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혼쭐이 나고도 국민의 분노를 ‘찻잔 속 태풍’으로 착각한 걸까. 교육부는 다시 완장을 찬다. 그러고선 1조5000억원의 재정지원 ‘밥상’을 내밀고 배고픈 대학을 쥐락펴락한다. 돈의 노예가 된 대학은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돈줄 앞에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마비된 듯하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7월, 전국의 대학 총장과 입학처장들이 들고일어났다. 교육부가 대입 내신 반영 비율을 50%까지 확대하라고 겁박하자 “못 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입시 자율권을 짓밟지 말라”며 평교수까지 성명을 냈다. 놀란 교육부가 꼬리를 내렸다. 집단지성이 완장을 물리친 거다.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에서도 데자뷔가 벌어졌다. 10년 전과 달라진 건 딱 하나, 등록금이 동결됐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돈이 궁한 대학의 약점을 후벼댄다. 정시를 확대하고 수시에서 수능 최저등급을 없애지 않으면 밥상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더니 중대사인 대입 개편마저 균형이 기울어진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겼다. 대학도, 학생도, 학부모도 혼란에 빠졌다. 참다못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유성엽 위원장이 교육부 폐지 법안을 내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인데도 집단지성은 침묵한다.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자존감도 잊고 제각각 잔반이라도 얻어먹으려고 기웃거린다. 답답해서 총장 5명에게 물었다. 떳떳하게 실명을 밝히자고 했지만 손사래를 쳤다. 재정 지원과 정원 축소의 ‘저승사자’인 대학별 기본역량 진단평가를 받는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부 간섭이 어느 정도인가.
“역대 최고다. 입학금 사용 명세를 10만원 단위로 보고하라고 할 정도다. 기본역량 진단평가에 11만 쪽이 넘는 자료를 냈다. 며칠 전엔 수험생처럼 90분 동안 면접도 봤다. 세상에 이런 갑질이 어딨나.”
 
왜 말 못하나.
“혼자 영웅 되겠다고 ‘배 째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정권 초기 아닌가. 홍콩 과기대나 싱가포르 난양공대처럼 큰돈 받는 것도 아니지만 밉보일 수는 없다. 부끄럽다.”
 
하버드대 총장을 20년간 지낸 데릭 복은 대학의 생명은 자율과 경쟁, 적응력이라며 눈치 보지 않고 학생·교수 선발과 교육과정을 뜯어고쳤다.
“하버드대는 기금만 350억 달러인데,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등록금이 10년 가까이 동결돼 돈이 씨가 말랐다. 교수도 뽑지 못해 학교가 10년은 늙었다. 우리를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 전쟁하라고 등 떼밀고 총을 빼앗으니….”
 
교육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잘하는 데는 더 주고, 못하는 데는 끊으면 된다. 직접 개입을 간접 관찰과 격려(지원)로 바꿔야 한다. 이런 상태론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협력하는 괴짜(Cooperative Geeks)’를 키워낼 수 없다.”
 
총장들의 고충을 이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뒷말만 하는 건 지성이 아니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 세계 대학들은 죽기 살기로 뛰는데 언제까지 뒤에 숨을 참인가. 앞에 나서야 한다. 교육부가 뭇매를 맞고도 여전히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건 돈줄 앞에서 대학이 납작 엎드리기 때문이다.
 
다시 대학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10년 전 선배들은 해냈는데 후배들은 왜 침묵하나. 당당해지자. 툭하면 터지는 재정·연구 비리, 방만 경영, 입시 불공정 의혹을 깔끔히 청소할 뼈를 깎는 셀프 혁신이 필요하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해내야 한다. 그래야 교육부가 군소리 못 한다. 대학의 생명인 자율을 확보해 경쟁력과 적응력을 키워 세계로 나가야 한다. 그 짐을 지성의 대표인 총장들이 지고 있다. 용기를 내시라.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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