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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랑은 '밀당' 중간점서 생긴다

중앙일보 2018.04.26 15:00 종합 18면 지면보기
[더,오래 시 한수] 윤경재의 나도 시인(7) 
나팔꽃. [사진 조용철 기자]

나팔꽃. [사진 조용철 기자]

 
생명은 물음표
 
한해살이 나팔꽃 구부러진 줄기 끝에
물음표가 달렸나?    
 
허공에서도 외줄기 길을 찾아 묻고는
먼저 나온 짝에게 다가가
함께 손잡고 매달려 오르자 하네
 
어느 어둠 밑에서 꽃봉오리 열어  
새벽 종소리를 울려야 하는지  
군말 가득한 낮에는 입술을 오므려  
담장 너머 누구에게 휘파람을 전할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설레며
온통 궁금한 사연뿐
 
정답을 몰라도 온몸으로 부대끼며
자전하는 임 따라 스스로 춤을 춰
 
인간도 한 생명에서 나왔겠지
생명이 낳은 게 물음표 곡선이라면  
인간이 지어 올린 건 직선쯤 아닐까
그럼! 느낌표라도  
몸 끝에 달아야 하지 않을까
 
물음표든 느낌표든
꿈꾸는 자에 앞서 길을 이끄는 표지판
생명은 은밀히 물어야 성실히 답하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낌표 하나 놓으면
그와 그였더라도
내가 알고픈 당신이 되리
 
[해설] 건강한 사랑은 '밀당' 중간점서 생긴다
줄기 끝이 돌돌 말렸다가 펴나가면서 길을 찾는 나팔꽃. [일러스트 김예리]

줄기 끝이 돌돌 말렸다가 펴나가면서 길을 찾는 나팔꽃. [일러스트 김예리]

 
나팔꽃 줄기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덩굴 식물이라서 줄기 끝이 돌돌 말렸다가 펴나가면서 길을 찾는다. 다른 나무나 줄기에 기대어 서로 감싸 안으며 자라 올라간다. 나팔꽃이 자라는 걸 보면 마치 허공에 길이 나 있어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같다. 어떤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나팔꽃이 점프, 도약한다고 표현했다.
 
어찌 나팔꽃인들 주저하지 않겠는가. 암중모색을 거치며 커가는 거겠지. 숱한 시도와 좌절 속에서 자기 길을 찾는 거다. 구부린 몸을 더듬이처럼 물음표 삼아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거다. 타인에게 다가가 의향을 묻는 거 같다.
 
나팔꽃의 영어이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
오전 중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대낮에는 꽃이 입술을 오므린다고 붙여진 이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 [중앙포토]

오전 중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대낮에는 꽃이 입술을 오므린다고 붙여진 이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 [중앙포토]

 
나팔꽃은 한해살이식물이라 7~8월에 꽃이 피고 일찍 씨를 맺는다. 단단하고 검은 씨를 흑축이라 부르는데, 한약재로 사용한다. 꽃도 밤 자정쯤 봉오리 맺을 준비했다가 이른 새벽 4, 5시경에 핀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오전 중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한창 대낮에는 꽃이 입술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이다.
 
누군가는 꽃이 나팔 모양이라 바람둥이 떠벌이라 말하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 고난을 겪는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전령사 같다. 군말이 많은 한낮에는 알아서 입을 다무니, 쓸데없는 일에는 침묵하는 진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고 오직 임만을 바라보는 것 같다.
 
사랑은 외줄기 길이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길을 함께 따라 걷고 싶다. 목적지 방향이 나도 아니고 그 사람도 아니고 오직 당신뿐이다. 자기주장을 접고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길은 다양한 것 같아도 결국은 외줄기 하나뿐이다. 다만 둘이 사랑하는 마음을 합쳐 제3의 길을 낸다면 더욱 좋겠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색하기에 중간에 제3의 길이 창조된다. 그 길은 결코 직선일 수 없다. 약간씩 구불거릴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에 관심이라는 긴장과 이완이 흐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행복해지는 건 삶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어떤 느낌표를 채우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어떤 느낌표를 채우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사랑한다는 건 타자를 당신이라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행복해지는 이유가 바로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감격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주인공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살맛이 나겠는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나와 달랐던 사람을 우리는 타자라고 부른다. 그 타자를 받아들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고, 그 삶의 방식이 아무리 어색해도 온전히 받아들여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게 사랑의 출발점이다. 어쩌면 자기 삶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길 원한다면 그는 영원히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끼리 사랑은 어떤 교류가 필요하다. 아무리 내리사랑이 넘치는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가끔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사랑이 정서의 교류이기에 그렇다.
 
건강한 사랑의 길은 밀고 당기기 중간 점에서 형성된다. 건강하게 자기를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다가가려면 양보와 균형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 또 명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어떤 느낌표를 채우는 것이다. 그 느낌표가 바로 나팔꽃이 감아 올라가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느낌표는 매개역할을 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우리는 ‘!’를 느낌표라고 약속하고 사용한다. ‘?’는 물음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를 느낌표라 해도 되고 ‘/’를 물음표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사회가 미리 정해 놓은 것 뿐이다. 그러니 맹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 뜻은 상대방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내 규칙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살려면 먼저 그 사회가 쓰는 언어와 관습을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한국인이라도 어떤 사회에 들어가 소통하려면 그 사회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새벽시장 중개인이 되려면 먼저 수화처럼 보이는 그 분야의 몸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 언어를 모르고서는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는 세대 간 갈등은 소통 언어에 차이가 있다는 걸 모르기에 발생한다. 먼저 언어에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 나온 언어를 배우려고 나이 든 쪽에서 다가가는 거다.
 
누군가 노력하는 몸짓을 보일 때 둘 사이에 어떤 느낌이 생긴다. 그 느낌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어차피 모든 걸 배워야 할 사람이니 젊은 너희가 양보하라는 건 강요이며 설득이다. 설득은 폭력이다. 폭력은 반드시 갈등과 상처가 남는다.


설득은 강자의 논리, 계급언어
누구도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되며 먼저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진 freepik]

누구도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되며 먼저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진 freepik]

 
여태 우리는 설득은 나쁘지 않다고 배웠다. 설득도 양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설득은 강자의 논리였고, 편의주의였으며 계급언어였다. 그간 정치인들이 보여준 태도가 늘 가르치려 들었고 좀 나은 게 설득이었다.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심지어 부부지간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이런 소통 언어가 따로 있다. 누구도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먼저 그냥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언어는 그 색깔이 아주 다르다. 남성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여성에 비해 좁고, 겹치고 감춰져 있다. 예를 들면, 남성은 슬픔과 상실감을 대개 분노로 표현한다. 여성은 말을 안 해도 상대방이 알아차릴 거라 믿는다. 이러니 오해가 빚어지기 딱 좋다. 상대방 언어를 배우려는 몸짓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부부라고 해서 언제나 잘 통할 것이라고 안심해서는 금세 후회할 일이 벌어진다.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대화거리가 더 많다. 그러니 부부지간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거리가 부족하다는 건 위험신호이다. 둘 사이에 느낌표를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참고로 나팔꽃 줄기는 어떤 지지대를 감아 올라갈 적에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과 일치하게 돈다. 대지의 모성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좌선한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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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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