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65년짜리 '임시 건물'서 만나…오찬은 남북 각각 작전타임

중앙일보 2018.04.26 12:44
27일 오전 9시 3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 도착해 남쪽으로 향한다. 김 위원장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건물 사이로 난 폭 4m의 길을 따라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어온다. 6ㆍ25 전쟁 이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는 순간이다. 
 
 
김정은이 지나올 건물 이름에 붙은 T는 ‘임시’를 뜻하는 영어 단어 ‘Temporary’에서 따왔다. 1953년 정전협정을 위한 임시 건물이 무려 65년간 그 모습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단의 상징이 된 T2 건물 앞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김 위원장을 직접 맞는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2018 남북정상회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번 회담은 27일 하루다. 각각 2박 3일 동안 진행됐던 2000년과 2007년 회담과 달리 압축적일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날 12시간 가까이 만나 두 번의 정상회담과 기념식수, 친교 산책, 공식 만찬 등을 이어간다.
 
 
 
분단의 선을 넘어 만난 두 정상은 전통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나란히 걸어 공식 환영식이 열리는 판문점 광장까지 이동한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개최 측임을 고려해 김 위원장을 상석인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 나란히 걸어갈 가능성이 크다.
 
 
18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 집 전경. [중앙포토]

18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 집 전경. [중앙포토]

9시 40분. 두 정상은 함께 국방부 의장대를 사열한다. 북한 지도자의 국군 사열은 처음이다.
 
청와대는 평양에서 열렸던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의장대를 사열하게 했던 전례를 고려해 사열을 결정했다. 다만 예포와 국기게양 등은 생략했다. 국가 대신 군악대와 취타대가 아리랑을 연주한다. 300명 가량의 의장대와 군악대가 참여해 진행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판문점 지역이 협소한 점을 고려해 1분 정도로 짧게 진행한다”고 설명했지만 복잡한 남북 관계가 감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열을 마친 두 정상은 다시 나란히 걸어 정상회담장이 마련된 남측 평화의 집으로 이동한다.  김정은은 1층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한 뒤 접견실에서 정상회담에 앞선 사전환담을 한다.
 
 
남북 두 정상의 첫 만남이 이뤄질 T2와 T3 건물. [중앙포토]

남북 두 정상의 첫 만남이 이뤄질 T2와 T3 건물. [중앙포토]

‘준비 운동’을 마친 양 정상은 10시 30분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의 중앙 출입문을 통해 동시에 입장한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화의 집에 대한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쳤다. 핵심은 과거 좌우로 나눠 따로 입장했던 출입구를 중앙 현관으로 바꾼 것이다. 나란히 회담장에 들어선 양 정상은 타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두 사람 간의 거리는 불과 2m 18mm다. 정상들의 모두발언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 남북 정상은 본격적인 오전 협상을 벌인다. 그런 뒤 양 정상은 따로 오찬을 하기로 했다. 오찬 시간을 사실상 오전 협상에 대한 각자의 ‘작전 타임’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행원을 재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한다.
 
 
 
남북은 전체 회담 일정에 합의하고도 유독 오찬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아 왔다. 이처럼 오찬 일정이 나오지 않으면서 한 때 두 정상이 개성에서 오찬을 할 수도 있다는 등의 '파격 행보'가 전망되기도 했지만 결국 각자 오찬으로 정리됐다.  
 
 
남북 정상이 앉는 테이블 중앙 지점 폭, 즉 두 정상 간 거리는 이번 회담을 상징하는 2018㎜이다. [청와대]

남북 정상이 앉는 테이블 중앙 지점 폭, 즉 두 정상 간 거리는 이번 회담을 상징하는 2018㎜이다. [청와대]

남북 정상은 각자의 입장을 정리한 뒤 오후에 다시 만난다.  
 
 
문 대통령은 오찬을 마치고 재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올 김 위원장과 함께 소나무를 함께 심는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해인 1953년생인 소나무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으로 갔던 ‘소떼 길’ 군사분계선에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섞어 식수된다.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뿌린 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의 표지석을 세운다. 표지석에는 양 정상의 서명도 들어간다.
 
 
 
이어 양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하며 담소를 나눈다. 오전 회담 결과에 대해 양 정상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 감독위가 판문점 내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만든 다리다. 유엔사가 ‘FOOT BRIDGE’라고 부르던 것을 그대로 번역해 도보다리는 이름이 붙었다.
 
 
 
'통일의 소'를 실은 차량행렬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통일의 소'를 실은 차량행렬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판문점=공동취재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일산 킨텍스에 차려진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회담 전 도보다리를 확장 공사해 군사분계선이 표시된 부분까지 연결돼 있는데, 두 정상이 그곳까지 가게 될지 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결론은 산책 이후 이어지는 오후 정상회담에서 나온다. 임 실장은 “합의 내용에 따라 합의문 발표 형식과 장소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이슈인 비핵화에 대한 의견 접근이다. 그는 “정상 간 합의가 이뤄지고 명문화한다면 ‘판문점 선언’이 될 것”이라며 “합의 수준에 따라 평화의 집 앞마당에서 (공동) 발표할 수 있을지 서명에 그칠지, 실내에서 간략하게 발표하게 될지 결정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앙포토·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앙포토·연합뉴스]

 
합의 수위에 따라 공식 만찬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양 정상을 비롯해 수행원들이 참석하는 만찬은 6시 30분 평화의 집 3층 연회장에서 열린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씨가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찬을 마친 두 정상은 평화의 집 전면 스크린에서 상영될 ‘하나의 봄’이라는 주제의 영상을 함께 감상한 뒤 김 위원장 일행을 환송하면서 정상회담 일정을 마무리한다.
 
 
 
강태화·김준영 기자 thka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