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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강한 원화 시대를 향하여

중앙일보 2018.04.26 01:51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지금부터 10년 반 전인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경제변수는 바로 환율이었다. 미 달러당 원화의 가치는 900.7원까지 올랐다. 그해의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929원.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달러당 1995원까지 폭락했던 원화 가치는 그렇게 2006~2007년 두 해 동안 900원대를 유지했다.
 

북한 리스크 해소되면 ‘1달러=900원대’ 환율 다시올 듯
중기 수출 위축되지만 새로운 사업 기회 크게 늘어날 것

저환율로 국민들은 실질 소득(구매력)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렸다. 석유류 등 수입 물품의 가격이 뚝 떨어졌고, 해외에 나가 돈 쓰는 재미가 커졌다. 하지만 수출 기업들은 죽을 맛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의 위험을 피하려고 ‘키코’라는 환헤지 상품에 허겁지겁 가입했다가 나중에 큰코를 다쳤다. 그럼에도 2007년 수출은 전년보다 14% 늘어나는 호조를 보였고 경상수지 흑자도 118억 달러에 달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환율은 다시 급변했다. 남북 관계가 냉각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닥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원대를 기록했다. 이 정부는 고환율(원화 약세)을 최대한 이어가는 정책을 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수출을 통한 성장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외환시장 개입에 연간 2조~3조원의 나랏돈이 쓰였다.
 
환율은 한 나라 경제의 종합 성적표다. 경상수지와 성장률 등 현재 점수뿐 아니라 미래의 위험과 기회까지 반영한다. 눈앞의 경제지표들로만 봐선 원화가 달러 등 다른 통화들과 비교해 푸대접(저평가)받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미래에 언제 터질지 모를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원화 환율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탓이다.
 
이제 역사적인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과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펼쳐진다. 앞으로 환율은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회담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현재 달러당 1080원 선인 환율이 1100~1200원대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반면 회담 결과가 좋게 나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올해 안에 달러당 900원대 환율 시대가 10년 만에 다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북한 리스크가 해소되는 차원을 넘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토대가 될 게 분명하다. 개성공단 같은 게 많이 생겨 경쟁력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이 활로를 찾고, 내수시장이 8000만명으로 확대되는 차원도 뛰어넘는다.  
 
한반도는 유라시아대륙을 향한 동쪽 끝 관문으로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펼쳐지는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향한 도로와 철도·가스관 건설, 외자도입을 위한 평양 증권거래소 개설 등으로 글로벌 자금과 인재·물자가 몰려올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남한은 저절로 북한 관련 국제 비즈니스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물론 실제 과실을 따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환율이 이런 호재들을 선반영해 성급하게 움직이는 데 따른 대비책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기업들이 혁신 역량을 키우며 생산성을 높여 스스로 원화 강세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규제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환율 관찰대상국 지정으로 외환시장 개입의 운신 폭이 줄었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 환율의 널뛰기를 막으며 질서 있는 후퇴를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수출 중소기업들에 유용한 환헤지 상품들을 다양하게 제공해야 하겠다.
 
원화 강세에 따른 우리 국민의 실질 구매력 상승은 내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내에선 돈을 안 쓰고 해외로 나가 즐기려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강한 원화 시대를 맞아 내수를 활성화할 방안을 찾는데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강한 원화는 우리에게 운명이자 축복이다. 잃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을 얻겠다는 배짱으로 한번 부딪쳐보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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