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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금통위원, 법대로 뽑아보라

중앙일보 2018.04.26 01:39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요즘 학수고대, 청와대 전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추천 때문이다. 은행연합회는 금통위원 1명의 추천권을 갖고 있다. 다음달 12일 임기가 끝나는 함준호 위원의 후임 추천이 마침 은행연합회 몫이다. 그렇다고 김 회장 마음대로 추천할 수는 없다. 청와대의 낙점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행법 13조는 금통위원에 대해 “은행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금융가에선 “말이 추천권 행사지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를 그대로 추천하는 게 관례”라고 말한다.
 

한은 총재 연임에 이어
한은 독립의 상징 될 것

금통위원은 흔히 ‘신이 숨겨 놓은 자리’로 불린다. 연봉 3억원에 4년 임기가 보장된다. 박사급 보좌역과 비서·기사와 차량이 제공된다. 명예도 대단한 데다 외풍을 타지 않는다. 일단 임명되면 대통령도 맘대로 못 자른다. 진영 논리가 힘을 쓰는 요즘 같은 때 특히 안성맞춤이다. 전직 장관부터 정권에 친분 있는 유력 인사 모두 탐내는 자리다. 역대 정권은 금통위원 자리를 논공행상하듯 나눠 줬다. 이번엔 좀 달라졌으면 한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한국은행 총재를 연임시켰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총재를 연임시킨 것은 한은 70년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잘한 일이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크게 높인 쾌거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가면 어떨까. 금통위에도 자율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시작은 금통위원 추천권부터다. 법의 취지에도 맞는다. 한은은 금통위원에 대해 경제 각 분야의 추천을 받도록 한 한은법을 “다양한 분야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수렴·조정함으로써 통화신용정책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법대로’ 금통위원을 임명하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득이 있다.
 
첫째, 집단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과거 금통위원은 관변 학자나 관료 출신 일색이었다. 청와대 입맛대로 고른 결과다. 엇비슷한 사람들이 거시경제만 뚫어져라 들여다보다 보면 엉뚱한 결정을 내리기 쉽다. 시장과 따로 노는 금통위 결정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은행가나 기업인 출신이라면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시장을 들여다보고 소통할 수 있다.
 
둘째, 한은 독립성이 강화된다. 미국의 채권 금리가 3%를 넘어서는 등 세계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저금리 시대의 종언이 성큼 다가왔다. 국내 외환·증권 시장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럴수록 단기 성과에 목매게 마련인 정부에 휘둘리지 않고 긴 호흡에서 금리 결정을 가져가는 게 필요하다. 게다가 미·중 간 무역·통화 전쟁의 전운도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한국의 환율 주권도 위협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한은 독립성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한은의 독립·독자성이 확보될수록 정부의 운신 폭도 커진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예컨대 “(꼭 필요한 환율 개입 등에 대해) 한은이 한 일이다.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 당신네도 Fed(연방준비제도)의 결정을 좌지우지 못하지 않느냐”고 미국에 따질 수 있다.
 
셋째,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 늘릴 수 있다. 금융·산업은 민간 영역이 더 크고 교류도 활발하다. 금통위는 한국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과도 소통해야 한다. 넷째, 금융 적폐청산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관행이라지만 한번 손에 쥔 권한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노른자위 자리에 대한 임명권임에랴. 이런 금단의 유혹을 이겨 낼 때 ‘법 위의 청와대’도 바뀔 수 있다.
 
다섯째, 이제나저제나 청와대 전갈만 기다리는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목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이건 덤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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