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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경제에 실패한 김정은 “자책한다”

중앙일보 2018.04.26 01:13 종합 5면 지면보기
③ 문제는 민생, 개혁·개방 할 수 있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평양 뉴타운인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2016년 4월 착공돼 1년 만에 완공한 이곳엔 70층짜리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44개 동, 4804가구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평양 뉴타운인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2016년 4월 착공돼 1년 만에 완공한 이곳엔 70층짜리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44개 동, 4804가구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연합뉴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머쥔 북한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이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만성적인 경제난이다. 2012년 집권 이후 한때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미약하게나마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진 못했다. 이런 점을 간파한 때문인지 김정은은 유독 경제문제만큼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수입병(외제 선호)에 걸렸다”거나 “관료주의·형식주의와 타성에 젖었다”고 경제 관료를 공개 질타하는 모습 등이 드러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진단만 내릴 뿐 처방은 없었다.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을 말하다

 
경제 분야에 대한 김정은의 트라우마는 화폐개혁에서 촉발됐다.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11월 말 북한은 17년 만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가치를 100대 1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 절하)이 핵심이다.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해 장롱 속 화폐를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1990년대 말 대량 아사 사태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붕괴된 공식 배급망을 복원하고, 시장 역할을 축소하려는 뜻도 담겼다. 노동자의 월급을 현실화(북한 화폐로 평균 3000원 선)하는 조치도 취했다.
 
그렇지만 물가가 폭등하고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명 ‘돈주(錢主)’ 세력의 반발도 거셌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화폐개혁이 성공했다면 노동당 선전담당 부서는 후계자 시절 김정은의 경제 리더십을 부각할 호재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심 찬 개혁 추진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민심을 누그러뜨릴 희생양이 필요했다.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책임을 덮어쓰고 이듬해 봄 처형됐다.
 
김정은 경제관련 언급

김정은 경제관련 언급

집권 직후 김정은은 ‘인민경제’를 챙기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그는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해 6월엔 6·28조치로 불리는 경제관리 개선 방안도 내놓았다. 실적이나 초과생산에 따라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에서 시범실시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경제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제한적인 개혁 조치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으로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대북제재의 그늘이 본격화한 것도 발을 묶었다.
 
그해 3월 김정은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제 건설과 핵 개발을 함께 추진한다는 ‘경제·핵 병진노선’을 공식화했다. 핵무기 보유로 인해 재래식무기 구입 같은 군사비 투입이 줄게 됐으니 이를 민생에 돌리겠다는 논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에 문책성 해임을 당한 경제통 박봉주 총리를 6년 만인 2013년 4월 복귀시킨 것도 파국에 이른 경제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직접 챙기기보다는 ‘경제는 박봉주에게’란 의미의 포석을 보여줬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없는 북한 경제는 여태껏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이 자초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주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말이 공수표가 된 데 따른 민심 수습책이었다.
 
김정은의 경제 해법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스위스 유학 등 10대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데다 절대권력의 잠재적 후계자군에 포함돼 일반 주민과 차단된 생활을 했기 때문이란 얘기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연구서 『김정은 리더십 연구』(2017, 세종연구소)에서 “김정은은 15세였을 때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에게 ‘외국의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보니 어디를 가나 식품들로 넘쳐나서 놀랐어. 우리나라 상점은 어떨까’라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스위스 유학에서 귀국한 후인 2001년 3월(당시 17세)에는 후지모토에게 “우리는 매일 말도 타고 롤러블레이드도 타며 농구도 하고, 또 여름에는 제트스키를 하고 수영장에서 놀기도 하는데 일반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며 궁금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북한 경제의 실상을 무시한 과시성 건축·건설로 이어졌다. 평양에 70층 주상복합빌딩을 비롯한 고층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고, 뉴타운 형태의 개발이 벌어졌다. 승마구락부와 골프장, 문수 물놀이장이 만들어졌고, 강원도 문천에는 12개 슬로프를 갖춘 마식령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수억 달러를 들여 평양에서 20㎞ 정도 떨어진 순안공항의 리모델링을 마친 김정은은 “평양까지 고속철을 놓으면 좋겠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대부분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당시 경험한 세계적 워터파크인 알파마레(Alpamare)와 고속철 테제베(TGV)를 본뜬 것이란 평가다.
 
집권 첫해 김정은은 국제사회를 향해 개혁·개방의 시그널을 띄웠다. 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평양 중심가에 서구형 카페를 만들어 부인 이설주와 팝콘을 먹는 장면을 관영매체로 내보냈다. 서방 외교가에선 해외유학파인 김정은의 경우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를 것이라면서 기대를 보였다. 하지만 식량·에너지·달러 부족이란 삼각파도에 김정은의 경제구상은 휩쓸리고 말았다.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경제·핵 병진노선 종식을 선언하고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에서 경제사업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힌 건 노선 수정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경제 문제는 일단 후순위로 밀렸다. 북핵이란 긴급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김정은이 확답하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 비핵화 솔루션에선 ‘선핵후경(先核後經)’이 답이란 얘기다. 
 
<글 싣는 순서>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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