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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로 용기 준 언니, 이번엔 옷으로 희망 나눠요

중앙일보 2018.04.26 00:26 종합 27면 지면보기
엠케이앤릴리의 수석 디자이너 김미경씨(앞줄 왼쪽)와 이번 쇼를 함께 준비한 친동생 김은희씨가 런웨이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아트스피치]

엠케이앤릴리의 수석 디자이너 김미경씨(앞줄 왼쪽)와 이번 쇼를 함께 준비한 친동생 김은희씨가 런웨이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아트스피치]

지난 22일 영등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열린 한 패션쇼 현장.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걸음걸이가 제각각이다. 동선이 엉켜 서로 어깨를 부딪히는 서툰 모습에도 300여 명의 관객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쇼가 끝나고 모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디자이너는 ‘독설하는 언니’로 유명한 강사 김미경(55·아트스피치 원장)씨다.
 

미혼모 모델 무대 세운 김미경 강사
엄마 양장점 이름딴 MK&LILY 설립
김지선·정가은 등 연예인 재능기부

이날 행사는 김 원장이 론칭한 ‘엠케이앤릴리(MK&LILY)’의 첫번째 패션쇼였다. 25년 내공의 스타 강사가 병아리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새로운 도전을 한 건 김 원장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장도 걸어본 적 없는 미혼모 8명이 패션모델로 변신해 런웨이에 섰다. 개그우먼 김지선, 탤런트 정가은 등 ‘스타맘’ 17명도 재능기부로 동참했다. 패션쇼의 제목은 ‘용기 있는 여자들’이었다.
 
수익금 2000여 만원은 미혼모를 위해 쓰인다. 엠케이앤릴리는 모든 수익금을 김 원장이 2016년 설립한 미혼모 지원기관 ‘그루맘(사단법인)’에 기부하는 비영리 패션브랜드다.
 
미혼모와 패션쇼.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는 ‘김미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어진다. 젊은 여성들에게 뼈 있는 조언을 건네는 김 원장의 강의는 미혼모들에게 각별하게 다가갔다. 그는 6년 전 “힘들 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버텼다. 저에겐 선생님이 엄마”라는 한 미혼모의 말을 듣고 ‘그루맘’을 설립했다. 패션은 양장점집 딸로 자라며 어깨너머로 배워온 분야였다. 엠케이앤릴리의 ‘릴리’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리리양장점’에서 가져왔다. 그는 이번 패션쇼에 대해 “나의 모든 재능과 55년간 성취한 것들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패션 브랜드를 준비한 건 아니었다. 강의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재봉틀을 잡았다. 취미로 에코백을 만들다가 차근차근 옷 만드는 법을 독학했다. 집에 있는 옷을 무작정 뜯어가며 패턴을 익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패션스쿨을 찾아가 한 달간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숙제도 많고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즐겁게 만든 옷이 1000벌 정도 돼요.” 옷이 예쁘니 팔아보라는 주변의 제안에 브랜드를 만들게 됐고, 수익금 전액을 미혼모를 위해 쓰기로 결정하면서 비영리 패션브랜드의 형태를 갖췄다.
 
가장 자신있게 만드는 옷은 원피스다. 패션쇼에 올린 의상도 원피스가 가장 많았다. 그는 “심플하지만 반드시 섹시하거나 멋있는 포인트를 주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매 시즌 최소 5가지의 아이템을 꾸준히 출시할 예정이다.
 
패션은 사치재로 통한다. 미혼모들에게는 보다 실용적인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김 원장은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의 자존감”이라고 강조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루맘 설립을 준비하는 4년간 수많은 미혼모를 만나면서 깨달았어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정서적인 버팀목과 자존감 회복이에요.”
 
김 원장은 패션쇼에 참가할 미혼모 모델들의 식단관리와 운동을 두 달 동안 지원했다. 톱모델 변정수·박둘선을 섭외해 워킹수업까지 받게 했다. 패션쇼를 계기로 누군가는 평생 미뤄왔던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누군가는 소원했던 가족과 패션쇼장에서 다시 만났다.
 
“패션쇼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확신’이예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자아실현의 기회를 잃은 채 살아 온 미혼 엄마들에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돼 기쁩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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