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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1등 효자 반도체산업 왜 찬밥 취급 ?

중앙일보 2018.04.26 00:03 경제 9면 지면보기
최현주 산업부 기자

최현주 산업부 기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유독 예쁜 손가락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 경제에선 반도체 산업이 그렇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000억 달러(약 108조원)에 이른다. 국가 전체 수출액의 17.4%다. 국가 차원에서 육성에 나선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전교 1등 하는’ 효자다.
 
미래도 창창하다. 4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이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확대로 핵심 부품인 메모리 반도체 신규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앞으로 계속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중요한 산업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정부는 이 효자를 별반 예뻐하지 않는다. 그간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은 연구개발(R&D)비 정도였다. 가장 많은 지원을 했을 때가 연간 900억원 선이었고, 그나마 올해는 아직 새 프로젝트 지원이 없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 공세를 퍼붓고 있다. 2014년부터 2년간 1500억 위안(약 26조원)을 투자했다. 일정 금액 이상 연구개발비를 쓴 반도체 업체엔 법인세 면제 같은 혜택을 주고, 정부가 나서서 해외 유명 반도체 업체 공장을 자국에 유치한다.
 
세계적인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제조) 업체가 모여 있는 대만도 그렇다. 1980년대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인프라(신주공업단지)를 갖추고 각종 세제 혜택을 쏟아내며 육성에 나섰다. 연구소 건립 등 정부가 직접 R&D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한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인색한 것은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 지원=대기업 지원’이라고 여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업체는 없다. 세계 최강 메모리 반도체 국가라지만 기반이 부실하다.
 
기초 과학을 등한시하는 풍조로, 한 해 국내 전기·전자·물리·제어 공학을 전공한 석사 이상 졸업자는 35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도 대거 해외 업체로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며 국내 인재들에게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이 우려된다면 기준을 정하면 될 일이다. 당장 산학연이 연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인력 양성부터 나서야 한다. 공부 잘하는 효자를 찬밥 취급은 하지 말자. 
 
최현주 산업부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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