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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부동산 과열 땐 도시재생 중단 … 도넘은 정부의 투기 알레르기

중앙일보 2018.04.26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김태윤 경제부 기자

김태윤 경제부 기자

“도시재생 사업 지역이나 인근 지역에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경우 (도시재생) 사업 대상에서 즉시 제외하고 페널티를 부여해 집값 불안을 차단할 계획이다.”
 

쇠락한 도시 살기 좋은 공간 되면
집값·땅값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
자잘한 곳만 하면 사업 취지 못 살려

정부가 24일 100곳 안팎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대목이다. 애초 부동산 시장 불안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은 지역을 사업지로 선정하고, 그래도 시장이 과열되면 국토교통부와 도시재생특별위원회의 적격성 심사를 거쳐 사업에서 제외하거나 다음 해 뉴딜사업 선정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감정원은 아예 도시재생 사업지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과열진단지표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부동산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집값이나 땅값이 불가피하게 오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정부가 지레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도시재생 분야를 연구해 온 최창규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다고 도시재생 사업을 중단했다는 전례를 국내외를 막론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정부는 지난해 도시재생 시범사업지를 선정하면서 서울을 제외했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나 투기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서울에도 도시재생이 시급한 곳이 많다는 지적이 일자 이번 계획에 서울을 포함했다. 그나마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적은 지역을 선별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이미 도시재생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곳도 자유롭지 못하다. 제주 서귀포시가 대표적이다. 서귀포시는 지난해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이 17.3%로 전국 시·군·구 중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이에 대해 윤의식 국토부 도시재생정책과장은 “집값이 오른다고 무조건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 급등이나 투기 요소가 발생하면 심의를 거쳐 제외하거나 사업 시기를 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5년간 50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이 투기를 부추길까 걱정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역으로 50조원이나 쓰는 사업에, 그것도 일정 부분 부동산 개발이 불가피한 사업에 시장이 잠잠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다. 사업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든, 투기과열지구로 묶든, 개발 이익을 환수하든, 호재가 있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것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투기·과열을 막는다고 사업지 선정을 취소하면 그 피해는 도시재생 사업의 수혜자인 지역민과 청년, 저소득층, 임차인 등에게 돌아간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덜 주는 자잘한 중소 규모 사업 위주로 선정하겠다는 정부 방침 역시 낙후된 도심을 되살린다는 도시재생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
 
스페인 포블레노우, 영국 런던 테크시티, 독일 베를린 팩토리.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본보기로 삼는 곳이다. 쇠퇴한 도시였던 이들 지역은 대부분 도시재생을 거치며 집값과 땅값이 올랐다.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센터장은 “오랜 기간 이어진 도시재생으로 살기 좋은 공간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창규 교수는 “정부가 도시재생과 부동산 규제 사이에서 우선 순위를 헷갈리면서 도시재생의 취지가 반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기는 막아야겠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김태윤 경제부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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