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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고종황제가 1899년 설립…119년 근현대사가 살아있는 최고(最古)의 은행

중앙일보 2018.04.26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8면 지면보기
우리은행
 

일제강점기 때 민족자본 은행 역할
세계적으로 유례 드문 ‘숙녀금고’도

우리은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이다. 119년 전 세워져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경제성장기에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을 위한 금융지원에 앞장서왔다. 현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은행으로, 또 디지털 금융과 글로벌 진출을 선도하며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은행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제국 황실자본과 조선상인이 중심이 되어 ‘대한천일은행’ 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사진은 1947 년 대한천일은행 본점 광통관 전경. [사진 우리은행]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제국 황실자본과 조선상인이 중심이 되어 ‘대한천일은행’ 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사진은 1947 년 대한천일은행 본점 광통관 전경. [사진 우리은행]

우리은행은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899년 1월 30일 대한제국의 황실 자본과 조선 상인이 중심이 되어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대한제국 하늘 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가 황실 자금인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했으며, 정부 관료와 조선상인이 주주로 참여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과 주식회사로 기록됐다.
 
“조선사람 이외에는 대한천일은행의 주식을 사고팔 수 없다”고 명시하는 등 민족의 자존을 세우고 외세로부터 은행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2014년 6월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우리은행 은행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한천일은행 창립 및 회계 관련 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신규 지정하기도 했다.
 
강화도조약 후 외국 은행 조선 진출로 위기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무역 증가로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이 조선에 진출했다. 특히 일본의 제일은행(다이이치)의 진출은 조선 금융계에 큰 위협이 됐다. 이 와중에 정부와 상인을 중심으로 자주적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이 민족은행으로 역할을 했다.
 
우선 대한천일은행은 상인층이 중심이 되고, 고종 황제가 창립자금(창립자본금의 54%)을 지원하면서 황실은행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대한천일은행은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하게 성장해 현재 우리은행으로 이어지는 민족은행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한천일은행이라는 민족자본은행을 통해 화폐제도와 재정제도의 안정을 찾고 조선 상인의 자금 지원으로 조선 상권을 보호하는 등 일본 금융자본에 맞서 민족금융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경제성장기엔 산업부문 금융지원 앞장
우리은행은 은행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1950년대 후반 미국·일본·유럽 등 금융이 발달한 국가인 선진국 금융기관에 직원을 파견해 새로운 금융업무를 도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경제개발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1954년 회계기, 출납기 등을 도입하는 등 업무기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59년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여성만을 위한 은행 영업점인 ‘숙녀금고’를 개설해 여성의 금융지원을 통해 사회진출을 도왔다.
 
1970년대 저축캠페인과 온라인 업무개시를 홍보하는 모습.

1970년대 저축캠페인과 온라인 업무개시를 홍보하는 모습.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계획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내자동원을 위해 ‘예금제일주의’를 내걸고 강력한 저축운동을 전개했다. 우리은행은 서울시 공금예금의 증가와 65년 6월 시중은행 최초로 예금잔액 100억원을 돌파해 예금 규모 면에서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또 67년에 중소기업금융부를 신설하면서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강화했다.
 
경제부흥기에 수출 주도의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자연스럽게 기업의 해외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해외로 진출한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에 앞장서 왔다. 우리은행은 68년에는 은행 최초로 일본 동경에 해외지점을 개설해 해외로 영업망을 넓혔다. 77년에는 최초로 서울과 부산 간 온라인 업무를 실시하여 은행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졌으며, 고객과 기업은 좀 더 빠르고 편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 우리은행은 경제 발전기 한국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21세기 글로벌시장 진출 선도
금융산업 발전 측면에서는 2002년 국내 최초로 BPR(후선업무집중화)을 도입하고 시중은행에 모범사례로 전파되면서 금융시스템 고도화를 촉발시켰다. 2015년에는 대한민국 최초 해외상장은행을 인수해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은행을 출범시켰다. 또 캄보디아 소액대출회사인 말리스를 인수해 현지 금융시장에 맞는 진출을 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국내 최대 25개국 302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의 핵심 거점인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미얀마 등지의 동남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유기적 성장 전략(Organic Growth Strategy)’을 추진했다. 올해 500개 네트워크를 확보하며 현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전략과 함께 현재 우리은행이 추진 중인 사업모델인 종합플랫폼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5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를 출범시켜, 중금리대출을 비롯한 간편송금, 환전, 보험, 게임, 음악, 위비캐릭터, 모바일메신저 ‘위비톡’ 등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7년, 우리은행은 운용자산 규모가 6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과 주식부문 수탁은행으로 선정됐다. 이 밖에도 우리은행은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국방과학연구소·방위사업청 등 주요기관의 주거래은행으로서 기관에 특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송덕순 객원기자 song.deoks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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