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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한국] 1965년 자동차 생산 북한 4400대 vs. 남한 100대, 지금은?

중앙일보 2018.04.24 16:18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 동서 냉전의 축소판이 됐다. 북한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노선을, 남한은 미군정과 함께 강력한 반공 노선을 추구했다. 그렇게 ‘하나의 한국’은 1948년 두 개로 갈라졌다.
 
분단 70년을 맞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달라진 남·북의 모습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①정치, 경제, 산업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②군사(핵), 사회간접자본(SOC),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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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북한은 세습을 통해 분단 70년간 김일성 일가 3명이 최고지도자 위치를 유지해 왔다. 김일성(1948~1994)·김정일(1994~2011)·김정은(2012~ 현재)이 그들이다. 반면 남한은 군부독재 시기를 겪었지만, 현재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총 12명의 최고 지도자가 있었다. 이중 이승만(1~3대, 1948~1960)과 박정희(5~9대, 1963~1979), 전두환(11~12대, 1980~1988)만이 2차례 이상 대통령을 맡았다. 남한 대통령의 평균 재임 기간이 5.8년인데 반해 북한은 23.3년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자유도는 2017년 데이터를 반영한 2018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가 나왔지만, 정권과도기라서 제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자유도는 2017년 데이터를 반영한 2018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가 나왔지만, 정권과도기라서 제외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남한의 정치적 자유도지수는 1987년 민주 항쟁 전까지는 5점(7점 척도-최고 1점, 최저 7점)으로 부분적 자유와 비자유 국가의 경계선에 있었다. 하지만 민주 항쟁 이후에는 2점으로 자유 국가로 평가됐으며 2004~2012년 1점으로 최고점을 얻었다. 2013년 이후에는 다시 2점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북한의 경우 계속 최저인 7점을 기록 중이다. 언론 자유도지수(0점이 최고점, 최저점은 100점)의 경우 한국은 30점 내외로 전 세계 40~60위권인 반면, 북한은 95점 이상으로 세계 최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경제
분단 70년간 남·북한이 가장 많이 달라진 분야다. 6.25 전쟁으로 남북한은 폐허가 됐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은 연 68달러, 북한은 53달러로 아프리카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이후 1960년대~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국민소득이 2배 가까이 높았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가 자리 잡으며 상황은 역전됐다. 한국이 1994년 1인당 GNI 1만 달러를 넘어선 데 반해, 북한은 1970년대 수준인 400달러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기준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2만 7812달러)은 북한(666.9달러)보다 약 41.7배, 남한의 국민총소득(1639조 665억원)은 북한(36조 3730억원)의 45.1배 크다.

 
남·북의 무역총액도 계속 벌어져 왔다. 1970년까지만 해도 양국의 무역량은 남한 28억 2000만 달러, 북한 7억 4000만 달러로 약 4배가량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남한의 무역량이 1348억 달러까지 늘어난 데 반해, 북한은 41억 달러에 그쳐 격차는 32배로 벌어졌다. 이 격차느 2007년 한때 248배까지 벌어졌고, 2016년 기준으로는 남한 9016억 2000만 달러, 북한 65억 3000만 달러로 138배 차이다.  
 
북한의 교역국은 중국 편중이 심하다. 2016년 기준으로 약 92.7%나 된다. 핵실험 등으로 국제 제재가 심해진 탓이다. 반면 남한의 교역국은 수출 기준으로 볼 때 중국(24.8%)·미국(12%)·베트남(8.3%) 등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주요 수출품도 다르다. 북한이 수출품의 절반 이상을 철광석 등 광물성 생산품에 의존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반도체, 선박·해양, 자동차, 석유제품,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 위주다.
 
산업
경제체제의 차이는 산업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다.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으며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소위 '선진국 모임'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이 때 북한은 역대 최악의 기근을 겪으며 소위 '고난의 행군'을 했다. 남한은 동아시아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어려움을 겪었다.
 
분단 직후에는 북한이 산업화에서 앞서 갔다. 중공업 등 기존 산업시설이 북한 지역에 몰려있었고, 남한에는 산업 기반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6년 남한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55.9%)·광공업(27.2%)·제조업(26.8%) 등 2·3차산업 위주로 재편된 반면, 북한은 농림어업(29%)·광공업(28%) 등 1·2차 산업 위주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북한은 정부(22.4%)·농림어업(21.7%)·광업(12.6%) 등의 순으로 남한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인 자동차 생산량과 자동차 등록 대수를 봐도 남·북의 산업적 차이는 명백하다. 1965년 당시 북한은 44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남한은 불과 100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2016년을 보면 한국은 422만 85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북한은 3800대 생산에 그쳤다. 등록된 차량을 보면 남한은 총 2180만대로 국민 2.5인당 1대 꼴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28만 5000대 차량만 등록돼 90명당 1명꼴에 불과하다.
북한이 우위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탄 생산량이다. 세계 최대 무연탄 매장지 중 하나인 북한은 1965년 이미 1786만t의 석탄을 생산했고 2016년에도 3106만t의 석탄을 생산했다. 반면 남한은 1965년에는 1025만t의 석탄을 생산했지만, 산업구조가 바뀌고 탄광이 문을 닫으며 2016년에는 173만t의 석탄만 생산했다.
 
 하나의 뿌리, 두 개의 한국 -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② 편에서는 군사, 핵무기, 사회간접자본, 생활 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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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디자인=임해든, 최민희·최한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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