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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가장, 수술 아물기도 전에 출근한 까닭

중앙일보 2018.04.24 15:00
[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9)
캐나다에 이민 온 지 꽤 오래된 지인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이민 올 당시 한국에서 돈을 좀 가지고 와 집을 한 채 사고도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우선 돈이 좀 있었기 때문에 취직에 대한 강박관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 매일같이 쫓기듯 살아야 하는 한국생활이 싫어 이민을 온 터라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등산과 같은 취미생활에 푹 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부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은행 통장을 보여주며 한숨을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은행 잔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왔는데 통장을 보는 순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 서 너달 버틸 만큼만 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캐나다 이민 후 2년이 흐른 어느날 통장 잔고를 보고, 그날로 이력서 수십통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사진 Freepik]

캐나다 이민 후 2년이 흐른 어느날 통장 잔고를 보고, 그날로 이력서 수십통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사진 Freepik]

 
그날로 이력서 수십통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직원이 필요할 것 같은 쇼핑몰이나 슈퍼마켓 같은 곳을 직접 방문해 이력서를 전달하고 취직을 부탁했습니다. 얼마 뒤 편의점 한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매니저가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부터 출근해달라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첫 출근 3일 전 배가 몹시 아파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급성맹장염 진단을 받고 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틀 뒤 퇴원했지만, 수술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출근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 날 출근을 했습니다. 그만큼 생계가 절박했기 때문이지요.
 
처음 출근하는 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색하지 않고 일을 하던 중 수술부위가 벌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또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당장 그만둘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죽기야 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피가 흐르는 수술부위를 손바닥으로 눌러가며 버텼습니다. 통장잔고가 자꾸 눈에 어른거렸던 것입니다.


 
벼랑 끝 절박감 아니면 취업 힘들어
결국 생계를 이어가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그로 하여금 일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민자들의 취업은 벼랑 끝에서 느끼는 절박감이 큰 힘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절박감을 느끼지 못하면 구직활동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캐나다에서 취업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게 또 있습니다. 경력과 네트워크입니다.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는 대부분 경력을 필요로합니다. 문제는 요구하는 경력이 캐나다에서 쌓은 경력을 의미하고 한국에서의 경력은 웬만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취업컨설턴트는 원하는 직업과 연관된 분야를 미리 경험해보는 '발런티어' 활동을 해보는게 좋다고 조언한다. [중앙포토]

취업컨설턴트는 원하는 직업과 연관된 분야를 미리 경험해보는 '발런티어' 활동을 해보는게 좋다고 조언한다. [중앙포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하는 직업과 연관된 분야를 미리 경험해보는 '발런티어' 활동을 해보는 게 좋다고 취업컨설턴트들이 조언합니다. 캐나다는 발런티어제도가 아주 잘 마련돼 있어서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만 하면 원하는 분야에서 활동할 기회가 많습니다. 발런티어 활동은 직장을 구할 때 아주 좋은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일자리를 구할 때 처음부터 100% 맘에 맞는 직장을 구하려 하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즉 취직이 좀 더 쉬운 직장을 구해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직원을 채용할 때 나이는 따지지 않으니 차근차근 단계별로 준비하는 것이 결국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단계적으로 경력을 쌓아가는 경우 염두에 두어야 할 매우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경력직원을 뽑는 기업에서는 구직자에게 레퍼런스(평판 조회)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즉 전 직장 근무할 때의 근무 태도나 실적 등을 확인하기 위해 두세 명의 참고인을 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대개는 전 직장의 매니저 같은 상급자를 레퍼런스 명단에 올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채용담당자는 구직자를 인터뷰한 다음 반드시 그 참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직자에 대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원하는 직장에 무난히 취업하기 위해서는 어느 단계에서든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네트워크, 즉 인맥이 무척 중요한 취업요건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인맥을 동원해 취직하면 부정한 청탁행위를 하는 것처럼 인식되기에 십상인데 캐나다에서는 민간기업은 물론 심지어 공무원들까지도 기존 직원들의 추천을 받아 채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10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세계적인 비디오 게임제작업체인 EA (Electronic Arts) 밴쿠버 캠퍼스에서는 신규채용되는 직원 가운데 80% 정도는 기존 직원들의 추천으로 채용된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수한 직원을 추천한 기존 직원들에게는 회사에서 포상하는 제도까지 운용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기존 직원이 추천하는 경우 이력서 뿐만 아니라 능력검증이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사진 Freepik]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기존 직원이 추천하는 경우 이력서 뿐만 아니라 능력검증이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사진 Freepik]

 
회사입장에서는 직원을 채용할 때 이력서만 가지고 능력평가를 하는 것보다 기존 직원이 추천하는 경우 오히려 능력검증이 정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민자에게는 이런 채용 관행이 지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낯선 땅에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인맥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의 경우 이민자 봉사단체나 취업교육기관 같은 곳을 부지런히 방문하고 수시로 열리는 잡 페어(Job Fair) 또는 잡 서치 프로그램 같은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자들 나라인 캐나다에는 이민자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해주는 각종 단체가 많고 취업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직 전문교육기관, 기술·영어·인맥의 일석삼조 효과
캐나다에 이민 와서 좀 더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경우 이민 오자마자 구직활동을 하는 것보다 취업을 위한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캐나다에는 구직자들의 취업을 목표로 전문교육을 하는 교육기관이 아주 많습니다. 본인의 적성이나 성격 등에 맞는 교육과정을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돼 있는 것이지요.
 
그런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우선 자신이 평생 종사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제대로 찾아내고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다 자연스레 영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기회도 주어지게 됩니다. 일석삼조, 꿩 먹고 알 먹고 하는 셈이지요.
 
물론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민생활 한 두 해하다가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처음에 어느 정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필자의 경험에 의한 지론입니다.
 
주호석 벤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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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석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필진

[주호석의 이민스토리] 많은 사람이 한국을 떠나 이민을 하고 싶어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녀 공부 때문에 골머리 아프지 않고, 노후 걱정할 필요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그런 꿈을 안고 이미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캐나다 이민 17년 차의 눈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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