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분석]미 백악관 "과거처럼 핵동결 함정 빠지지 않을 것"

중앙일보 2018.04.22 17:22
[연합뉴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 실험 동결 선언을 “큰 진전”이라고 했지만, 백악관은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제재 해제는 챙기면서, 궁극적으론 핵보유국을 인정받는 ‘동결의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협상에서도 동결로 제재 완화와 함께 핵ㆍ미사일 개발 시간을 버는 데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굿 뉴스""큰 진전" 트윗 환영에도,
보좌진 "상징적 양보, 경제제재 완화 노려,
동결로 한·미 공조 위협, 미·일 분열 의도"

페리 "북 유리한 고지 선점, 협상 어려워져"
힐 "실무팀 추가 파견해 공동성명 협상해야"
빅터 차 "비핵화 선언아니라 핵보유국 선언"

백악관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북한 발표 직후 “굿 뉴스”라며 환영하고 나서자 별도 회견이나 공식 성명 발표 대신 이를 개인적 입장으로 전달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도 미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실험 중단이나 주한미군 주둔 인정 같은 화해 제스처로 외교적 우위를 선점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진짜 무장해제 대신 상징성은 있지만 대단치 않은 양보로 핵무장 국가 지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의 숨통을 죄고 있는 경제제재에서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양보는 실질적인 핵 폐기 조치를 시작하기 이전에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도록 자극하려는 의도란 분석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조치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고 여러 차례공언했지만, 보좌진들 눈에도 “북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역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이 쏠려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협상은 시간 끌기보다 빠른 실패가 더 낫다”는 입장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김 위원장 발표 1시간도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이 흥분해서 칭찬하는 트윗을 하는 걸 막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모든 핵 실험을 중단하고 주요 시험장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북한과 세계에 좋은 뉴스이자 큰 진전”이라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한다”고 트윗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의 메시지는 북한은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고, 핵 실험 중단 약속을 입증하기 위해 북쪽에 있는 핵 실험 장소를 폐쇄하겠다는 것”이라며 “모두를 위한 진전”이라고 두 번째 트윗도 썼다. 하루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회담에서 결실이 없는 경우엔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가 김 위원장의 핵 및 ICBM 발사 중단 선언에 반색한 것이다.
 
반면 미 관리들은 북한이 비핵화 언급은 없이 “핵 동결은 세계적 핵 군축에 합세한 조치”라고 주장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ㆍ미 간 중재자 역할을 해온 문재인 대통령과 공조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폐기로 가는 순차적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간격을 줄임으로써 북ㆍ미간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북한은 조치마다 미국의 보상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 위원장의 성명이 일본이 최대 위협으로 생각하는 단거리,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한 언급을 뺀 것은 미국과 일본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중앙포토]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중앙포토]

 
북한과 과거 비핵화 협상에 참여했던 미 전직 고위관리들도 일제히 신중론을 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라 핵보유국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동결 선언은) 정상회담으로 가는 전단계로 트럼프 행정부의 공로로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북한은 이로써 유리한 입장에서 회담장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미 핵 억지력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볍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며 “회담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리 전 장관은 “보다 걱정스러운 건 (비핵화 합의) 일정이 너무 느려지는 것”이라며 “북한이 빠른 기간 내 ‘강압적 사찰’을 받으면서 그들이 보유한 핵무기고를 모두 해체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대사

크리스토퍼 힐 전 대사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김정은의 발언을 보면, 핵 실험 중단 이유로 핵무기 완성을 들었다”며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더는 실험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지, 정치적 결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계리 실험장도 6차례 핵실험으로 노후화됐기 때문에 폐쇄 발표를 너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힐 전 대표는 “김정은이 핵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고도 제안했기 때문에 지켜볼 때”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팀을 추가로 북한에 보내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선임 국장으로 6자회담에 참여했던 빅터 차 교수는 “북한의 성명은 핵 실험, 선제적 사용 및 핵 이전의 금지 등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며 “비핵화 선언이라기보다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해줄 수만 있다면, 북한이 원하는 모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 교수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양보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이냐는 것”이라며 “우리가 북한에 원하는 건 분명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ㆍ평화협정ㆍ관계 정상화ㆍ한미훈련ㆍ미사일 방어 중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철저히 검토한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