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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MC로 변신에 성공한 프로야구 응원단장

중앙일보 2018.04.21 15:02
[더,오래] 이상원의 포토버킷(19)
미국인들 상당수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죽음이나 이혼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크다고 하니 놀랍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한국인도 그렇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지 꽤 오래됐지만, 아직도 사람들 앞에 서면 첫 강연 때처럼 긴장되고 떨린다.
 
대중 강연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바로 여러 사람의 분위기를 띄우는 일이다. 첫 직장에서 회사 전체 야유회 MC를 본 적이 있는데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다. 적당한 유머 코드를 섞어서 멘트를 하면서 행사를 매끄럽고 분위기 좋게 이끌어야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세계 최초’ 프로야구 응원단장 출신 전문 MC
자칭 ‘세계 최초 국가대표 응원단장 출신 전문 MC’라고 소개하는 박홍구(40) 씨와 대화를 하면서 역시 사람은 저마다 잘하는 일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박 씨는 얼마 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공중파 아침방송에 출연했다. 
 
방송 출연은 처음인데 떨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말 신났죠. 스튜디오가 조금 더 넓었다면 장기인 텀블링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라며 당장 텀블링을 하는 듯한 몸동작을 보여줬다. 인터뷰 장소가 넓었다면 진짜 텀블링을 할 기세였다.
 
프로야구 응원단장에서 MC로 변신한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프로야구 응원단장에서 MC로 변신한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응원단장과 MC라는 직업의 세계를 잘 몰라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가대표 응원단장 출신 MC는 정말로 세계에서 처음인가요”라고 물었다.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응원단장 출신 MC로는 처음인 게 확실하고요." 박 씨를 보면서 ‘마케팅은 포지셔닝(Positioning)이 중요해 사람들 머릿속에 첫 번째로 자리 잡도록 해야한다'는 미국 마케팅 대가인 잭 트라우트의 한 마디가 생각이 났다.
 
박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빌려주신 PC 통신 단말기를 통해 처음으로 춤 동호회에 가입하고 이때부터 춤에 푹 빠졌다. 중3 때 이 동호회에서 역시 춤에 미친 1년 후배 이재원을 만났다. 나중에 아이돌 그룹 H.O.T.의 멤버가 된 그 이재원이다. 
 
꾼은 꾼을 알아본다고 둘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해 친해졌다. 고등학교 진학해서는 축제 때 춤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때 이재원이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 같이 기계체조 학원에 다니자고 제안했다. 박 씨는 그 때 미처 몰랐다. 배운 춤과 기계체조가 나중에 응원단장을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는 사실을.
 
H.O.T. 이재원과 함께 동호회서 춤 배워  
과거 H.O.T. 이재원과 함께 춤을 추던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과거 H.O.T. 이재원과 함께 춤을 추던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이재원은 얼마 후에 H.O.T.로 데뷔했고, 박 씨는 부모의 바람에 따라 교수의 꿈을 꾸며 경기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춤과 기계체조의 장기를 살려 응원단장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 물었다. 

아니었어요.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입학식 다음 날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대학교면 응원단이 있겠네’ 하고요. 춤추고 텀블링 보여주니까 쉽게 입단시켜주더라고요. 당시 응원단 중에서 텀블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기계체조를 배운 저에게는 너무 쉬웠지요.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그때부터 응원에 미친 거죠. 나중에 단장도 빨리 되고 전국응원단연합회 부회장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대학교 1학년 응원단 시절의 박홍구 씨(가운데). [사진 이상원]

대학교 1학년 응원단 시절의 박홍구 씨(가운데). [사진 이상원]

 
응원단 하면 재미있는 추억이 많지 않을까 궁금해 하나만 소개해 달라고 했다. 

MT 가서 역 앞에서 공연하고는 했어요. 신입 단원 용기도 길러주고 용돈도 벌고요. 공연 끝나고 모자 들고 한 바퀴 돌면 MT 회비는 모을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응원단 연습은 힘들었지만, 단원끼리 끈끈한 문화가 참 좋았던 시기였어요. 아, 그리고 군 생활하면서 응원단 경험 덕분에 즐거운 추억을 만든 적이 있어요. 부대 체육대회 때 응원단장을 했는데 당연히 1등을 했죠. 중대장이 기분 좋아서 100명 넘는 중대원 전체에게 외박을 줬어요. 저는 영웅이 됐죠.

 
직업으로서 응원단장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보통 회사처럼 지원하고 시험 보고 면접 보는 방식은 아닐 것 같았다. 

제대 후 복학해 학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어린이뮤지컬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응원단 선배의 추천으로 여자프로농구팀의 응원단장이 됐어요. 소문이 나서 남자프로농구팀 응원단장도 했고 프로배구 응원단장도 했습니다. 모 음료 회사가 모집한 2006년 독일월드컵 원정응원단장으로도 뽑혀 300명의 응원단을 인솔해서 다녀왔습니다. 모두 졸업 전에 있던 일이었죠. 운이 좋았어요. 선배들의 도움도 컸고요.

 
재미있는 스토리에 인터뷰라는 것도 잊고 수다 떨듯이 한참 대화를 하다가 문득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비결을 물어봤다. 

맞아요. 운이 참 좋죠. 비결은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은 편이죠. 좋은 제안을 잘 해주고 저는 받아서 열심히 할 뿐이죠.

 
장기인 텀블링으로 야구 응원 열기 북돋아 
박 씨가 응원단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야구 응원단장이 된 것도 운이 크게 작용했다. 친한 친구였던 한화이글스의 응원단장이 SK와이번스로 옮기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박 씨를 추천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에 친구가 다시 한화로 옮기면서 박 씨가 SK로 가게 됐다. 프로야구에서 SK가 소위 ‘왕조’를 구축하던 시기에 응원단장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때도 박 씨는 특유의 장기인 텀블링을 맘껏 자랑하며 팬들의 응원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팀에서도 보조를 맞춰 특별한 선물을 해줬다. 8회 초 끝나고 응원가 ‘연안부두’가 흘러나올 때 모형 배에 응원단장을 태워 리프트로 높이 올려주는 이벤트를 만든 것이다. 이 시간에 응원 열기가 가장 뜨거워지고는 했다.
 
SK와이번스 응원단장 시절의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SK와이번스 응원단장 시절의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응원단장의 꽃이라고 하는 프로야구 응원단장을 그만두고 MC로 변신한 이유는 박 씨가 참고로 보여준 아침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응원단장이 정말 좋은 직업인데 시즌이 끝나면 재계약 걱정도 해야 하는 등 조금 불안정한 면이 있습니다. 오래 할 수도 없고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들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분위기 띄우는 일을 안 하면 못 살 것 같은데 말이죠. 응원단장을 하면서 틈틈이 행사 진행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중에 전문 MC를 해 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에 변신을 시도했지요.

 
충분히 준비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응원과 행사 진행은 또 다른 세계인데 얕보고 함부로 덤볐다가 큰코다친 기억도 많다. 겸손하게 체계적으로 다시 배워야겠다는 결심 끝에 MC 양성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나서야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카데미 선후배, 동료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체육대회 진행을 하는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체육대회 진행을 하는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체육대회를 진행하면서 텀블링 한 번 넘어주면 분위기가 금방 뜨거워진다. 주례 없는 결혼식 사회를 보면서 박 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질풍 가도’ 응원공연을 보여주면 하객은 물론 신랑·신부에 부모님까지 ‘난리가 난다’. 돌잔치 사회를 갔다가 야구단 팬을 만나면 반갑다. 그 팬이 다른 팬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이제는 제법 소문이 나서 과거 야구단 팬들이 인터넷에서 봤다며 먼저 행사 요청을 해올 때가 많다. 덕분에 얼마 전 공중파 아침방송에도 출연해 솜씨를 마음껏 자랑했다.
 
아침방송에 출연한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아침방송에 출연한 박홍구 씨. [사진 이상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일이 제 천직입니다. 좋아하기도 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으니 행복하죠. 좀 더 경험을 쌓고 나서 대중강연에도 도전해 볼 계획입니다. 잘 나갈 때 비상 타이어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거든요. 한화이글스 홍창화, 롯데자이언츠 조지훈 응원단장이랑 친한데 이 친구뿐 아니라 응원단 출신, MC 출신 선후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겁니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는데 돌려줘야지요.

 
불 안 붙여줘도 스스로 잘 타는 '자연성 인간'
일본 경영의 구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인간을 세 종류로 분류한다. 불붙여도 안 타는 불연성 인간, 불붙여 주면 잘 타는 가연성 인간, 불 안 붙여줘도 스스로 잘 타는 자연성 인간. 조직에 자연성 인간이 많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가연성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씨의 표현에 의하면 ‘소박한’ 꿈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가 스스로 잘 타면서 주위 사람도 잘 타게 불붙여 주는 ‘자연성’ 인간이라 느껴졌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에너지 넘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참 부럽다. 강연하러 가보면 가장 힘들 때가 사회자로부터 소개받고 첫 마디를 떼야 할 때다.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어설픈 농담을 하다 오히려 더 썰렁해진 적도 있다. 다음 강연에는 박홍구 씨를 초대해 강연 전에 공연도 하고 텀블링도 넘게해 청중을 좀 깨워놔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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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필진

[이상원의 소소리더십]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며 성공보다 성장이 행복의 열쇠임을 알았다. 소탈한 사람들의 소박한 성공 스토리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이끈 소소한 리더십을 발견해서 알리는 보람을 즐긴다. “애송이(이탈리아어로 ‘밤비노’)들의 성장을 돕는다”라는 비전으로 ‘밤비노컴퍼니’를 운영 중이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뀐’ 성장스토리를 담은 『몸이 전부다』를 출간(2017년)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 등에서 ‘성장의 기회와 비결’에 대해 강연을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연습을 통한 실력축적과 함께 생각, 말, 행동 등의 좋은 습관으로 키워지는 셀프이미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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