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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방부 '문민화'는 '행시화'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8.04.19 02:0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재 정치부 차장

이철재 정치부 차장

지난 2월 1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가 열렸다. 당시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부 장관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부 장관이 얘기를 나누는 사진이 공개됐다. 두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경력도 철도회사 임원(프랑스)과 정치인(독일)으로 군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세계 5위(프랑스·글로벌파이어파워)와 10위(독일)의 군대를 책임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모두 문민통제에 충실한 나라다. 문민통제는 국가의 군사·국방 정책을 직업 군인이 아닌 민간 정치인이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전쟁은 군인들의 손에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스는 문민통제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다 문민통제의 원칙을 따르지만 한국은 예외다. 11대 현석호 장관(1961년 1~5월)을 끝으로 역대 정부의 국방부 장관은 늘 군인 몫이었다. 현역 신분이 아니더라도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무늬만 민간인’끼리 장관직을 대물림했다. 전쟁이 언제라도 날 수 있기 때문에 군을 잘 모르는 민간인 장관은 안 된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민 국방부 장관을 통한 국방부의 문민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에서 오랜만에 문민 장관이 나올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정부가 문민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례로 현역 군인이 맡은 고위공무원의 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다. 전문성을 갖춘 현역 군인이 그 자리에서 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마땅찮다. 문민화의 일환이라고만 한다. 그러면 고참 과장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승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은 국방부에서 민간 인력과 군인의 전문성·특수성이 상호보완해 발전하도록 규정했다(10조). 여기서 ‘민간 인력’은 행시 출신 공무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방부 전직 당국자는 “국방부에 현역 군인들로 가득할 때 생각이 비슷했고, 계급에 눌려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하지 못했다”며 “국방부는 그룹싱크(집단적 사고의 동일화)의 온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역 군인의 자리를 행시 출신 공무원이 채운다고 국방부의 그룹싱크가 개선된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국방부는 미국처럼 고위직의 문호를 민간 전문가에게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시험 기수나 근무 연수만으로 고위직을 뽑는다면 ‘문민화’는 ‘행시화’에 그칠 수 있다. 이는 진정한 문민화와도 거리가 멀다.
 
이철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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