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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본사가 이자 장사? 노조·정치권 근거 약한 ‘GM 먹튀론’

중앙일보 2018.04.19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제시한 한국GM의 법정관리(법원 주도 기업회생절차) 시한(20일)이 임박했지만, 노사는 자구안에 합의를 못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여·야 정치권은 GM과 KDB산업은행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GM 본사가 한국GM의 이익을 빼돌리는 ‘먹튀’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GM 본사의 고금리 대출,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 본사의 불합리한 완성차·부품 거래 의혹 등 한국GM 부실 원인으로 제기되는 세 가지 의혹을 GM 본사 연례보고서(GM 10-K)와 한국GM의 회계장부·신용평가보고서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선 노조와 정치권은 GM 본사가 한국GM에 연 5.3%와 4.8% 금리로 1조1000억원(2017년 말)을 대출하고 있는 것은 “본사가 한국GM의 이익을 빼가기 위한 고금리 대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GM에 대출해 준 GM 본사도 4~5%대 금리로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고 있다.
 

신용등급 낮은 GM 조달금리 높아
한국GM에 빌려준 이자율과 비슷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 의혹도
매출액 증가와 비례해 늘어난 것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GM 본사도 부채비율이 507%(2017년 말 기준)에 달하는 등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아 신용등급이 낮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2월 GM 본사의 신용등급을 ‘Baa3’로 평가했다. 신용이 좋지 못한 본사가 다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자회사에 비슷한 금리로 대출하는 것을 두고 “고금리 이자장사를 한다”고 보긴 힘든 것이다.
 
본사가 한국GM에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부담하게 했다는 의혹도 근거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지난 10일 ‘한국GM 부실, 진짜 원인 규명 대토론회’에서 “한국GM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2003~2006년 평균 2700억원 수준에서 2007년~2016년까지 6000억원 규모로 껑충 뛰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GM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액 비중을 조사하면 모두 3~4% 수준으로 일정하게 나타난다. 연구개발비 지출이 늘어난 시기에는 매출액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는 해외 법인의 매출액 비율에 따라 해외 자회사 전체 연구개발비 지출액을 분배하는 ‘비용분담협정(Cost Share Agreement)’에 따른 것이다. 해외 자회사 전체에 적용하는 똑같은 연구개발비 처리 기준이다. 박해호 한국GM 부장은 “감사보고서에 공시돼 있지는 않지만, 지출된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본사가 다시 돌려주는 정책(용역매출수익)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본사가 완성차와 부품을 부당한 가격에 한국GM과 거래했다는 의혹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약에 따라 모든 해외 지사에 같은 가격으로 완성차와 부품을 거래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결국 한국GM의 부실 원인은 그간 제기된 세 가지 의혹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 주최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황현일 경희대 사회학 박사도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GM 성장세가 하락한 핵심적인 이유로 ▶중국 공장의 생산 능력 확장 ▶유럽 쉐보레 브랜드 철수에 따른 판매 시장 축소 ▶한국GM의 독자 차량 개발 이점 상실 등을 꼽았다.
 
이런 거시적인 상황은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바꾸기 어렵다. 또 GM의 한국 시장 철수 여부는 GM 본사의 경영 판단으로 이에 관여할 수도 없다. GM이 한국에 계속 남아주길 바란다면 그럴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술이 뛰어난 협력업체들이 많고, 미래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 시장의 장점을 살리고 한국 공장의 고비용 구조를 극복해야 GM도 계속해서 한국에서 사업할 이유가 생길 것이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를 철수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과 같은 잣대로 GM을 바라봐야 한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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