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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일본보다 경직된 한국의 근로시간 규제

중앙일보 2018.04.17 03:04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제2차 구조개혁 평가를 준비하느라 대학들이 요즘 바쁘다. 평가 결과에 따라 하위 40%에 들어가면 정원이 감축되기 때문이다. 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교수·직원들은 매일 새벽까지 일하고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7월부터는 여러 날 계속해서 밤샘 작업을 할 수 없다. 교육서비스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직원들이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 대학 총장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한국 정부가 허용 최장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하면서 조간만 현실이 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다.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축소하고 탄력적 근로 시간제는 기존대로 유지하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일본의 경우, 서구 수준의 실근로시간 단축을 고민하면서도 한국보다 유연하고 신축적이다. 현재 일본은 최장 근로시간에 법적 제한이 없다.  
 
다만 지난 6일 일본 국회에 제출한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보면 연장근로 시간을 연 720시간, 월 100시간(휴일근로 포함)을 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예외인정 업종은 없으나 계절적 요인, 제품 납기 이행의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한국보다 높은 연장근로 시간의 상한선을 설정해 현장 상황에 맞게 기업들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일본 정부는 잔업을 줄여 근로자의 삶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근로시간 단축을 획일적으로 적용했을 때 업종이나 상황에 따라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자동차·철강·전기·전자 등 주력산업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근로시간 규제로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 가뜩이나 일본의 80%에 불과한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더 떨어질까 우려 된다. 또한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신제품 개발과 관련해 일시에 집중적으로 일하는 정보기술(IT) 기획, 게임 개발 등 연구개발(R&D) 업종 종사자들도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부품 조립을 반복하는 공장 근로자처럼 근로시간 제약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R&D 경쟁력은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론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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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한류 산업도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합숙 생활을 하는 연습생·신인들은 근무시간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제작여건과 시스템이 판이한 상황에서 사전제작제 등 구미 방식을 당장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예인들은 일이 없으면 몇 주, 몇 달씩 쉬는데 오히려 상당수 연예인과 종사자들이 기간제 근로자나 독립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현행 탄력적 근로 시간제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 기준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정법 부칙에 2022년까지 검토하기로 되어 있는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조속히 확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탄력적 근로 시간제가 확대된다고 실근로시간이 늘어날 소지는 없다. 한국보다 연 근로시간이 약 800시간 짧은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의 탄력 근무제 운용은 매우 유연하다. 독일은 6개월 또는 24주 이내로 법에 정해져 있으나 노사가 합의하면 단체협상으로 1년 단위 탄력근무제가 가능하다.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하는 프랑스는 물론 스웨덴·오스트리아·미국 등도 탄력 근무제의 단위 기간을 1년까지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연장근로 시간의 상한을 주 12시간으로 정하고 있으나 많은 나라에서 연장근로 시간의 상한이 없거나 노사자율로 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싱가포르는 연장근로 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다. 영국은 근로자가 서면 동의하면 주당 14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주당 법정 기준근로시간이 35시간인 프랑스는 산업·기업별 단체 협약을 통해 연장근로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50인 미만 기업은 노조를 거치지 않고 사내 근로자대표 또는 개별근로자(20인 미만)와의 협상을 거쳐 자체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다.
 
한국의 개정 법은 2022년 말까지 특별연장근로를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업종 특성을 반영해 특별연장근로를 더 허용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끝으로 일하는 방식이 직무 중심으로 바뀌고, 임금체계가 근속 위주에서 생산성 제고를 유인할 수 있는 직무급·성과급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하락 보전이 기업의 경쟁력 약화나 근로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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