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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시진핑의 중국은 당을 위대하게 만든 혼종성 배워야

중앙일보 2018.04.17 01:05 종합 24면 지면보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향하는 ‘강국(强國)’의 한 모델로 당(唐)이 거론되곤 한다. 당은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강력한 파워를 가진 동아시아의 맹주(盟主)였다. 그 화려하고 당당한 기상은 흔히 ‘성당기상(盛唐氣象)’이란 말로 중국인들에 의해 회자하곤 한다. 한데 아쉬운 건 현재 시진핑의 중국이 추구하는 게 당의 외형적 모습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당을 강하게 만든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에 하는 말이다.
 
 
‘상사절(上巳節, 봄 소풍 가는 날) 날씨 화창한데, 장안의 물가에 고운 사람 많네. 살결 매끄럽고 적당한 몸매에, 수놓은 비단옷 늦봄에 빛나는구나. 그중 구름 같은 장막 속 양귀비(楊貴妃) 일가들, 큰 나라 괵국(虢國) 진국(秦國)부인을 하사받은 사람들이네.’
 
봄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한떼의 말을 탄 무리가 멀리서 다가온다. 곧이어 화려하게 치장한 말에 붉은 치마를 입은 귀부인 하나가 나타난다. 귀부인 이름은 괵국부인(虢國夫人). 그 옆엔 당당한 자태의 진국부인(秦國夫人)이 동행한다. 괵국부인과 진국부인은 당 현종(玄宗)이 사랑하는 양귀비(楊貴妃)의 친언니들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양귀비가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함과 동시에 양귀비의 친자매 또한 현종의 공공연한 애첩이 돼 세도를 누렸다. 당시 사람들은 양귀비 자매들의 권력독점을 비판했지만, 그들과 현종의 관계를 패륜이라 질타하지는 않았다. 당의 성(性)문화가 유교 중심의 일부종사(一夫從事) 윤리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의 여성들은 중국의 다른 전통 왕조와 달랐다. 황제의 딸인 공주로부터 일반 여성에 이르기까지 재혼, 삼혼은 흔한 일이었고 이에 따른 차별도 없었다. 또 여성이 남성복장을 하고 직접 말을 몰면서 다녔고, 반드시 한 남성에게만 속해야 한다는 규범도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태종의 후궁인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태종의 아들인 고종의 황후가 된 역사, 그리고 양귀비가 현종의 후궁이지만 본래는 현종의 며느리였다는 사실은 지금의 관점을 적용해 굳이 비판하거나 해석할 필요조차 없는 자연스러운 그 시대의 문화였다.

 
당나라는 본래 중국 서북쪽 유목민족과의 혼혈 집단이 건국한 왕조였기에 태생부터 혼종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유교와 불교, 도교, 이슬람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고 수도 장안(長安)에는 서역에서 건너온 호인(胡人), 우리나라에서 온 신라인과 발해인, 바다를 넘어온 일본인, 동남아의 곤륜족(崑崙族), 상단(商團)을 따라 로마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유입된 사람들까지 온갖 민족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부터 공급된 다채로움은 당 문화의 특성인 혼종성(混種性, Hybridity)을 만들어냈다. 혼종성은 당나라가 동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고, 당은 그 기반 위에서 동아시아 최고의 제국으로 군림했다.
 
강력한 혼종의 문화는 주변 문화의 장점을 포섭해 자기화하기에 어떤 이질적 문화에도 쉽게 침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 주변의 국가들인 신라, 발해, 일본, 베트남 등은 당의 혼종성에 대해 익숙한 문화적 공통분모를 지니며 당의 문화를 표준으로 삼고 추종할 수 있었다. 즉 고대 동아시아는 당이란 제국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고, 그 제국 문화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인 팍스 시니카(Pax-Sinica)가 구현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1300여 년이 지난 이제 시진핑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의 세계제국으로의 부활을 예고하며 자신의 1인 권력체제를 합법화했다. 이는 세계제국이 되기 위한 중국이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가치관의 획득만을 위해 다른 모든 여지와 생각들은 말소해 버릴 것을 예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세계제국으로의 매진을 위해 오늘의 중국이 모델로 삼는 고대 국가가 다름 아닌 당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모토를 ‘성당기상’으로 삼은 바 있었다.
 
또 같은 시기에 ‘관당년(觀唐年)’이라는 용어, 즉 ‘당을 다시 살펴보는 해’란 말이 나온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의 기상, 당이 지닌 의미는 줄곧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추구하는 미래의 지향점이 돼 왔다. 당이 혼종성의 기반 위에 동아시아 영수가 됐던 것처럼 지금의 중국도 21세기의 새로운 팍스 시니카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정치와 군사란 외형 면에서의 세계 일인자뿐 아니라, 문화와 사유방식에서도 세계의 표준이 되고자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과연 당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당이 지녔던 혼종성의 현재적 구현에 달려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이질적 목소리를 조화롭게 수용하고 이를 발전의 에너지로 삼았던 당에 비해 지금의 중국은 하나의 목소리만을 용인하고 일체의 다른 목소리는 묵살한다.
 
사회주의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흔들린 뒤, 아직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도래하지 않은 현재의 중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복고적인 윤리 관념이 오히려 건재하기까지 한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나는 반금련이 아니다(我不是潘金蓮)’에서 보이듯이 여성이 한 남성에 대한 성(性)적 지조를 지켰는지에 따라 여성 자신의 행동 원칙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것이 주변인들의 평가 기준이 된다.
 
이는 유교적 도덕률보다는 인간 그 자체가 지닌 남녀의 개인적 감정을 더욱 중시한 당의 정서와는 매우 다른 부분이다. 중국은 당을 닮은 외형의 거대함만을 추구할 뿐, 그 안의 내용은 제대로 자신 있게 채우지도 못한 채 예전의 관습에서 이것저것 끌어오는 혼란스런 상태다.
 
비단 성 윤리만으로 과거의 당과 오늘의 중국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외국인들이 중국의 관료가 됐으며 제각기 다양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당은 혼종성 그 자체가 자신감이었다. 이에 비해 현재의 중국은 당과 같은 내면에서부터 차올라 뿜어지는 자신감과 수용성을 지니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21세기 시진핑 시대 팍스 시니카의 구현 여부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1300여 년의 사이를 두고, 고대의 당과 지금의 중국은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최진아
=중국사회과학원 문화연구소와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 방문학자 역임. 중국 고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현대 사회와 문화에 어떻게 연접되는지에 대한 탐구에 몰두 중. 대표 저서는 당의 환상 서사를 분석한 『전기(傳奇)-초월과 환상, 서른한 편의 기이한 이야기』.
 
최진아 이화여대 중국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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