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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못돌아온 동생·조카, 여전히 기다릴 뿐"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씨

중앙일보 2018.04.15 17:07
"4년이 다 됐는데 흔적 하나 찾지 못했네.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지. 몰랐어."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서 만난 권오복(63)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한 뒤 담배를 꺼냈다.    
 
권씨는 세월호 미수습자 희생자인 권재근씨의 형이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는 총 304명. 이중 5명(단원고 남현철ㆍ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와 아들 권혁규군)은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63)씨. 여성국 기자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미수습자 가족 권오복(63)씨. 여성국 기자

 
"엄마, 아빠, 오빠는 왜 나만 두고 이사가" 살아남은 조카는 주변 시선에 3번 전학 다녀
권씨는 2014년 4월, 사고 전 동생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동생이 가족들과 제주도로 감귤농사 지으러 귀농한다고 해서 15일 점심을 먹기로 했어. 15일 아침 동생이 '바빠서 시간 못 내겠다. 형님이 여름에 제주도로 내려오면 보자'고 했어. 지방에 갔다가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탄다길래. '할 수 없지 여름에 보자'하고 전화를 끊었어."
 
4월 16일 오전, 권씨는 아내의 가게에서 뉴스를 봤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큰 배가 넘어졌다고. 학생들만 탔고 전원 구조라고 하니까 다행이네 싶었어. 동생은 목포에서 탄다고 했으니까 아예 걱정 안 했지. 헬기로 조카(당시 5세)가 구조되는 걸 보고도, 이름도 지연이가 아니라 '지영'이라고 나오니까.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오전 내내 오보만 나왔어."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전남 목포신항을 찾은 시민들. 목포=프리랜서 장정필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전남 목포신항을 찾은 시민들. 목포=프리랜서 장정필

여동생에게 전화를 받고서야 권씨는 불행을 직감했다. 더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재근이가 저 배를 타고 있다고 하더라고. 제주서 만나기로 했던 분이 동생이 저 배 탄 걸 알고 있어서. 가족들한테 연락이 왔어."
 
소식을 듣자마자 권씨 형제들은 목포 한국병원으로 내려갔다. 울고 있는 지연양이 눈에 밟혔다. 권재근씨 아내인 베트남 이주여성 판응옥타인(한국명 한윤지)씨는 23일 시신으로 돌아왔다. 제조업 부품 회사를 다니던 김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진도에 머물렀다. 지난해 11월 18일 미수습자 가족 합동영결식 때 까지,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에서 3년 7개월 이틀을 보냈다. 권씨는 이후 서울아산병원에서 3일장을 치른 뒤, 동생과 조카를 인천가족공원에 마련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안치했다. "사고 나서 한 달쯤 뒤에는 지연이가 '왜 엄마, 아빠, 오빠는 나만두고 이사갔냐'고 했었어.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갈 일이라고 생각 못 했지"
 
권씨의 조카 지연양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사고 이후 고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동네에서 지연이를 다 알다보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수근거리고, 놀리고, 부담이 되니까 전학도 3번이나 가고. 이름도 다른 걸로 바꿨어."
 
얼굴 한 번 안본 이도 살아남은 지연양을 조롱했다. 극우사이트 일베 회원 일부는 욕설을 남겨 모욕죄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회원이라고는 다 20살 전후 남자애들, 합의 좀 해달라고 전화가 오는데 법대로 해달라고 했어."
 
김씨는 2016년 촛불 집회 이후 꺼져갔던 관심이 다시 타올랐다고 했다. "2015년 설 이후로 사람들 관심이 많이 줄었지. 2016년 지나고 완전히 발길이 끊어졌다가 10월 촛불 집회 시작되고 잊고 있던 사람들이 팽목항에 다시 밀려왔어. 크리스마스 때도 인산인해였지. 처음에 서운했는데 나중엔 고맙기만 했지. 꺼져가는 세월호를 촛불이 살렸다고 말했지."
 
"기약 없는 기다림, 가장 힘들어"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지난 12일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현대삼호중공업 관계자들이 선체 직립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지난 12일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현대삼호중공업 관계자들이 선체 직립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권씨는 4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꼽았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칠흙같은 밤 팽목항에서. 겨울이면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불었어. 하루 안 불면 이틀을 연달아 부는 곳이야. 바람 잘 날이 없었지. 술을 마셔야만 잠이 들었어. 오래 있다 보니까 여기저기 아픈 곳도 생기고."
 
지난해 4월 11일 세월호가 완전히 뭍으로 올라왔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된 뒤 선체조사위원회는 선체 내외부를 세척하며 미수습자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미수습자 9명 중 4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미수습자였다가 뭐라도 나온 가족들 보면 부러웠지만 부럽다고 할 수가 있나. 그들도 힘든데."  
 
직계가족이 아닌 불편함도 있었다. 그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권씨는 이전 집의 대출금을 못갚아 현재의 집으로 쫓기듯 이사했다고 했다. "부모나 자식이 아니고 2촌이니까. 어려운 점도 있었지. 혜택도 그렇고. 집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계셨으면 달랐겠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내가 끝까지 챙겨야지." 
 
세월호는 현재 목포신항에서 선체 직립을 준비 중이다. "2017년 선수 좌현 협착된 자리 자르고 수색하자고 했는데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지. 직립하면 뭐라도 좀 나올까 기대하고 있어. 그 기간 동안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을 위해 거처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
 
인터뷰를 마친 권씨는 다시 담뱃불을 붙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온 오르막길을 올랐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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