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난 항상 덜 아픈 손가락"…어떤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이야기

중앙일보 2018.04.15 10:30
장애인들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자조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그린 그림. [사진 피치마켓]

장애인들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자조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그린 그림. [사진 피치마켓]

 
"어렸을 적에 동생에게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툭하면 바닥을 뒹굴면서 울고 소리 지르고 밖에 나가면 도망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동생은 자페성 장애가 있다는 것도, 어떤 장애라는 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는 닉네임 '가넷'(27)씨가 2016년 여름 장애인들의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했던 말이다. 가넷씨의 말에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실제로 많은 비장애 형제들이 부모님에게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자책감·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요." 중증 발달장애 동생의 언니인 닉네임 '겨울'씨가 거들었다.
 
한 때는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형제자매가 미웠고, 또 부끄러웠다. '장애가 없는 자식이니까' 늘 이해해야 했고, 알아서 성숙해져야 했다. '동생이, 오빠가, 누나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자신을 수없이 자책했다. 주위 사람들은 측은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런 형제자매가 있는데, 꿋꿋이 참 잘 컸구나!"
 
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쓴 책 '나는-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표지. [사진 피치마켓]

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쓴 책 '나는-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표지. [사진 피치마켓]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했던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속마음을 담은 책이 최근 출간됐다. 발달장애와 느린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비영리단체 피치마켓은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 7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펴냈다. 현재 한국에는 약 32만 명의 정신 장애인이 있다. 또 그만큼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존재한다.
 
책은 2년 전 시작된 비장애인 형제자매 자조 모임 '나는'에서 이들이 나눈 대화 내용들을 담았다. '나는'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모임 프로그램 '대나무숲 티타임'을 통해 타인에게 받은 상처, 부모에 대한 감정, 불안한 미래, 형제자매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등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부모님에게 우린 늘 '덜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그린 만화. [사진 피치마켓]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그린 만화. [사진 피치마켓]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는 닉네임 '메이'씨는 책에서 "부모님들은 우리가 장애 형제자매에게 마냥 베푸는 천사같은 자식일 거라고 믿는 것 같다"고 했다. 닉네임 '무지개'씨는 "(지적장애인) 네 동생은 평생 걸려도 즐기지 못할 것들을 너는 즐기니까 불평하지마"라는 엄마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나 자신에게 스스로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마음 속 응어리들을 처음으로 같은 처지인 친구들에게 털어놓던 그날, 이들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따스함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게된 계기다. 그러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가넷씨는 "여러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기 어려울 것 같다'며 거절당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후 피치마켓과 연이 닿아 지난 2월부터 온라인에서 스토리펀딩을 진행했다. 42일 간 380명이 참여, 원래 목표 금액의 125%를 달성해 책을 낼 수 있었다.
 
현재 장애인 관련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가넷씨는 "더 많은 비장애 형제자매들을 만나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에 있고, 당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책 말미에 글쓴이들은 어딘가에 있을 비장애 형제자매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당신은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를 생각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