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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회사서 일한 아들, 근로자일까 공동사업자일까

중앙일보 2018.04.15 09:00
근로복지공단 전경.  [사진제공=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공단 전경. [사진제공=근로복지공단]

아버지 회사에서 일한 아들은 근로자일까 공동사업자일까. 법원은 근로자라고 봤다.
 

법원, 회사 손익 부담이 중요 기준
월급 일정치 않아도 근로자 인정
계약서 작성, 4대보험 여부는 부차적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하며 거래처에서 '사장'으로 불리웠더라도, 회사 운영에 대한 손익을 나누지 않았다면 아버지와의 '공동 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부친 회사에서 3년 가까이 일해오던 A씨가 회사에서 야근하다 쓰러져 사망하기 전까지, A씨가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A씨의 사망 후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하면서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는 맞다"면서도, 돈은 줄 수 없다고 했다. A씨가 '근로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사업주'라는 이유에서였다. A씨의 아내는 다시 심사해 달라는 청구도 냈지만 이 역시 기각됐고,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의 문도 두드려 봤지만 같은 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법원이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 다음 로드뷰]

서울행정법원. [사진 다음 로드뷰]

서울행정법원 행정 7부(부장 함상훈)는 A씨 아내와 근로복지공단 양 측의 주장을 들어봤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는 아버지 회사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바 없다. A씨는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고, 국세청에 근로소득 신고도 안 했다"는 점과 "A씨는 월급을 고정적으로 받지 않았고, 아버지의 통장에서 자신의 계좌로 직접 돈을 입금하거나, 아버지의 주거래통장 입출금 업무를 봤다"는 점을 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또 "A씨는 회사의 매출·매입 장부를 직접 작성했고, 일부 거래처에서 A씨를 '사장'으로 알기도 했다"는 점도 A씨가 '공동사업자'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일해온 근로자다"라는 A씨 아내의 주장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근로자냐 공동사업자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회사의 손익에 관한 위험을 부담하였는가"를 따져봤다. 재판부는 "A씨는 (아버지의 회사에) 자금을 투자한 정황이 없을 뿐 아니라, 회사의 거래대금은 모두 A씨가 아닌 A씨의 아버지의 계좌에서 나왔고, 현금이 들어오면 A씨는 아버지에게 전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A씨가 확보한 거래처에서 나온 수익이 A씨에게 직접 들어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A씨가 회사 운영에 대한 손익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지적한 것처럼 계약서나 보험가입 등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재판부는 "A씨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 회사의 영세한 사업규모에 비춰볼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4대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 볼 수 없다"고 봤다. 
 
A씨는 생전에 들어 둔 보험청약서에 자신의 직업을 '사무직 관리자'로 적어뒀는데, 재판부는 이 점 또한 고려에 넣었다. 재판부는 "A씨가 아버지 회사의 공동운영자라면 '자영업'이나 '개인사업'이라고 기재했을 것"이라고 봤다.
 
A씨가 받아간 돈은 매달 정확히 똑같진 않았지만, 재판부는 "회사 수익이 많지 않을 땐 급여가 적고, 수익이 많을 때 이를 보충하는 식으로 지급됐다"는 A씨 아내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부는 "A씨와 아버지의 인적 신뢰관계를 고려하면 이런 주장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면서 "단지 실제 지급된 월급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A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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