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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 선거 무산되거나 당선 취소...사라지는 대학교 총학생회, 왜?

중앙일보 2018.04.15 08:00
“현재 유권자 총 9000여명 중에서 9.45%인 849명이 투표했습니다. 3년 만의 선거를 위해서는 3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합니다.”
 
지난 11일 오후 한국외대 총학생회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다급한 글이 올라왔다. 이날은 한국외대에서는 ‘제52대 총학생회장단 재선거’가 시작되는 날이다. 통상 전년도에 열리는 총학생회 선거가 이듬해 4월에 다시 치러지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그동안 3년째 투표율이 저조해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면서 학기 초까지 ‘벚꽃 선거’가 열린 것이다.
11일 한국외대에서 제52대 총학생회장단 재선거가 실시된 가운데 페이스북에는 투표율을 알리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11일 한국외대에서 제52대 총학생회장단 재선거가 실시된 가운데 페이스북에는 투표율을 알리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총학생회의 부재는 이 대학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날까지 서울 시내 주요 7개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 한양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성공회대, 성신여대 등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한 지 오래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저조하거나 입후보자가 없어 아예 무산되거나, 선거 이후에 잇따라 당선이 무효 처리됐기 때문이다. 
 
총학생회 없는 비대위 ‘대체 불가’…교내 민주주의는 어디로
 
최근 총학생회가 없는 대학이 늘면서 ‘교내 민주주의’가 사라져 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위 체제에 돌입한 대학교 학생들은 학생 자치의 한계를 토로한다. 통상 비대위가 일반 단과대 학생회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활동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대위는 총학생회처럼 학교 운영 계획을 담은 선거공약을 발표하거나 학생 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홍성현(25) 연세대 비대위원장은 “총학은 다음 해 계획을 선거공약 발표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투표를 통해 동의를 받는 것부터 업무가 시작된다”며 “비대위는 학생들의 동의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한 학생이 2018학년도 총학생회 선거 재투표를 하고 있다.[뉴스1]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한 학생이 2018학년도 총학생회 선거 재투표를 하고 있다.[뉴스1]

비대위 체제가 학교 측에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대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크다. 비대위 관계자들은 ’대학본부가 비대위를 총학생회와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하지 않아 교섭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최인영(23) 한국외대 비대위원장은 “학교 측에 총장선출권을 학생들에게도 달라고 요구했지만 ‘학생회장도 못 뽑는 학생들에게 무슨 선출권을 주냐’는 답이 돌아왔다”며 “비대위는 총학에 비해 인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투표율 저조·입후보자 없음…“학생들 무관심 때문 아냐”
 
그러나 총학생회의 존폐 현상을 단순히 학생들의 무관심 탓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총학생회 투표 선거율이 저조하거나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는 데엔 과거 총학생회의 미숙한 운영에 따른 외면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덕성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는 총학생회 선거 과정 또는 선출 후 운영상의 문제가 불거져 총학생회장이 공석이 된 경우다.  
 
일부 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가 운동권 성향에 매몰돼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앞서 연세대, 한양대, 성공회대에서는 운동권 총학생회 선거본부를 비운동권 학생들이 집단 보이콧에 나서면서 문제가 됐다. 이들 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학생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학우들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하경윤(22)씨는 “총학이 학생 복지보다 학교 밖 운동권 활동에 집중한다고 느꼈다”며 “기업후원을 거부하고 자치적으로 예산 운영하겠다고 내세웠는데, 명분은 좋지만 학교 축제와 복지 규모가 줄어 불만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89년 11월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대학가 운동권이 주사파와 비주사파로 양분, 이념대립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대학에서는 89년 10월 31일부터 선거벽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89년 11월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대학가 운동권이 주사파와 비주사파로 양분, 이념대립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대학에서는 89년 10월 31일부터 선거벽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사회에서 개인주의·실용주의 가치관이 강해지면서 학생회의 필요성을 못 느낀 탓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대학생들은 취업·경쟁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총학생회가 다양한 요구를 취합하지 못하거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요즘 학생들은 학점 관리, 스펙 쌓기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총학생회가 학생 복지 활동 등을 통해 직접적이고 경제적인 혜택을 주길 바라고 있는 학생들은 운동권의 외부 활동에 실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총학생회 없어도 현실 문제에는 결집
 
총학생회가 없어진 학교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덕성여대와 성신여대는 교수를 가해자로 지목한 ‘미투 폭로’가 불거지면서 트위터와 학교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연대에 나섰다. 학생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토론한 뒤, 교수 연구실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자발적으로 펄치기도 했다. “성범죄자에게 배울 것은 없습니다” 등의 문구에는 학교 측에 재발방지 대책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바라는 학생사회의 요구가 담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총학생회라는 ‘구심점’이 없을 경우 일시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학생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총학생회의 존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손정아(21)씨는 “총학생회가 부재하다 보니 학교에 학생들 의견을 수렴해 대책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없어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3일 이화여대에서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연구실 앞에서 시작된 포스트잇 퍼포먼스. 권유진 기자

지난 3월 23일 이화여대에서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연구실 앞에서 시작된 포스트잇 퍼포먼스. 권유진 기자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엔 총학생회, 시민단체, 노조 중심의 집단행동보다 촛불집회나 ‘미투 운동’처럼 온라인 등을 통해 개개인이 뭉쳐 집단행동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이어 “총학 같은 주도하는 집단 없이는 장기적인 저항 동력이 떨어져 제도 변화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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