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르포] 세월호와 달라진 안전관리…탑승객 의식은 '아쉬움'

중앙일보 2018.04.15 06:00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의 구명조끼 보관함 주변에 승객들이 짐이 놓여 있다. 사고로 배가 기울어 짐이 쏠릴 경우 문을 여는 데 어려움이 예상됐다. 짐 보관함은 바로 옆에 따로 있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의 구명조끼 보관함 주변에 승객들이 짐이 놓여 있다. 사고로 배가 기울어 짐이 쏠릴 경우 문을 여는 데 어려움이 예상됐다. 짐 보관함은 바로 옆에 따로 있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봄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부실한 여객선 안전 관리의 민낯을 드러냈다. 가장 기본적인 탑승객 수 관리부터 사고 이후 대응까지 무엇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선장과 선원을 비롯한 선사 측은 돈벌이에 급급해 승객 안전은 뒷전이었다. 참사 4년,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연구본부 박용안 연구위원과 함께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에 탑승해 실태를 살펴봤다.
 
지난 12일 오전 8시30분쯤 목포항국제여객터미널. 제주행 여객선 퀸메리호(1만3665t)에 탑승하려는 등산복 차림의 60대 관광객이 매표소가 아닌 바로 옆 무인민원발급기 앞에 섰다. 신분증을 챙겨오지 않은 이 관광객은 선사 직원 안내를 받아 등본을 발급받은 뒤 간신히 표를 끊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신분증 확인은 필수가 됐지만 여전히 이를 모르는 승객들이 많았다.  
퀸메리호에 탑승하려는 승객이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등본을 발급기에서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퀸메리호에 탑승하려는 승객이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등본을 발급기에서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여객선에 타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하기 전 신원 확인이 이뤄졌다. 선사 직원들과 한국해운조합 관계자가 일일이 탑승객의 표와 신분증을 대조했다. 탑승객 452명이 이런 절차를 거친 뒤에야 선박에 오를 수 있었다. 세월호의 경우 탑승객 수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아 수색ㆍ구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탑승자 명단이 꼼꼼하게 관리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화물질 등 소지품 검사는 없었다. 관련 규정이 없어서다. 여객선의 정원이 1264명이나 되는 점을 고려할 때 안전이 다소 우려됐다. 선사인 씨월드고속훼리 함문형 부장은 “바다 위 선박에서 사건ㆍ사고가 날 경우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일종 규모 이상 여객선의 경우 탑승객 소지품 검사가 필요하다”며 “선사에서 임의로 할 경우 탑승객 반발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를 타려는 승객들이 승선표와 신분증 확인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를 타려는 승객들이 승선표와 신분증 확인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배가 출항하기 직전인 오전 9시쯤 각 객실과 편의시설에 설치된 TV를 통해 구명조끼 착용법 등 비상시 대응요령을 설명하는 녹화방송이 시작됐다. 그러나 집중하는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상당수 승객이 선내를 돌아다니거나 마루 형태의 선실 바닥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잠을 자기도 했다. 박용안 연구위원은 “비행기처럼 출발과 도착 직전 승객들이 승무원들의 통제에 따라 선실에 앉아 자신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명조끼 보관함은 객실마다 설치돼 있었다. 문제는 이를 막은 짐들이었다. 일부 승객들은 보관함 문 앞에 옷가지 등이 든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와 음식물 상자를 올려뒀다. 주변에 짐 보관함이 따로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월호 사고 때처럼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짐이 쏠릴 경우 구명조끼를 꺼내기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부 승객은 “다른 승객들이 짐을 쌓아두는 바람에 구명조끼 보관함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과 단체로 여행을 온 중학교 3학년 석겸(16)군은 “구명조끼를 선실뿐 아니라 복도와 편의시설에도 분산해 비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에 실린 차량들이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세월호 사고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 퀸메리호에 실린 차량들이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세월호 사고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여객선 갑판 양쪽 바닥에는 각각 3곳씩 노란 글씨로 ‘비상소집장소’가 표시돼 있었다. 이들 장소에는 50인승 27개, 100인승 3개 등 모두 30개의 구명뗏목이 설치돼 있었다. 승객들마다 객실이 어딘지에 따라 지정된 비상소집장소가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정작 자신의 소집장소가 어딘지 몰랐다. 박용안 위원은 “탑승권이나 각 선실에 비상소집장소를 표기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선사 측 협조를 받아 주차공간인 4층으로 내려가 봤다. 화물차는 물론 승용차도 빠짐 없이 앞뒤, 좌우 등 최소 4개 이상으로 바닥에 고박돼 있었다. 차량 바퀴에는 고임목이 놓여 있었다. 세월호에 실린 차량의 경우 고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배가 기울 때 쏠리면서 침몰을 가속화했다는 게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었다. 화물용 컨테이너도 아래쪽 4개 모퉁이가 바닥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박 연구위원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컨테이들이 선박에 실릴 경우 고박이 어려워진다”며 “안전과 효율성 측면에서 표준화된 규격의 컨테이너들이 쓰일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퀸메리호의 함문형 부장이 비상시 탑승객들이 이용할 구명뗏목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퀸메리호의 함문형 부장이 비상시 탑승객들이 이용할 구명뗏목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퀸메리호는 예정시각인 오후 2시에 맞춰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세월호 이후 강화된 안전규제는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었다. 이 배 김철수 선장은 “(선장과 선원들이) 운항관리규정만 제대로 지킨다면 안전 운행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안전에 무심한 일부 승객의 태도는 여전히 거슬렸다. 전문가들은 화물 및 승객 운송 중요 수단인 여객선의 공공성을 고려해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욱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포해양대 국제해사수송과학부 장운재 교수는 “(승객의 안전 문제가 걸린 만큼) 여객선은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된다”며 “안전을 고려해 공영제를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목포ㆍ제주=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