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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문재인 대통령 사과, 베트남은 한 줄도 보도 안 했어요
김진국이 만난 사람

문재인 대통령 사과, 베트남은 한 줄도 보도 안 했어요

중앙선데이 2018.04.14 00:01 579호 25면 지면보기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 성 퐁니·퐁넛 마을 주민 74명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됐다. 하미 마을에서는 135명이 학살됐다. 올해가 50주기다. 18일 그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이 한국에 온다. 시민평화 법정에서 증언하기 위해서다. 민변 등이 주최하고,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심 판사를 맡는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은 1964년. 그 이듬해 전투부대도 들어갔다. 한국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민간인 활동가들은 66년과 68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집중해 일어났다고 한다. 특히 68년에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구정(舊正) 대공세를 벌였다. 전투·비전투 인원이 구분되지 않으면서 민간인 희생이 많아졌다.

베트남은 모르는 사과
'마음의 빚 지고 있다' 유감 발언
진상조사하고 실질적 사과해야

모범 보인 독일
브란트, 현장에 가 무릎 꿇고 사과
"독일 사과했다" 전세계가 인정

억울한 참전 군인들
젊은 나이에 국가 명령으로 참전
인생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11일 "현장에서의 사과가 중요하고, 포괄적인 사과가 아니라 베트남 참전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11일 "현장에서의 사과가 중요하고, 포괄적인 사과가 아니라 베트남 참전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구수정(52)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1999년 현장조사를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벌였다. 최근에는 ‘만만만’ 캠페인을 하고 있다. ‘1만일의 전쟁, 1만인의 희생, 1만인의 연대’라는 의미다.
“베트남전을 1만일의 전쟁이라고 해요. 2002년 제가 집계했는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80여건에 9000여명으로 추산했어요. 그 뒤로 계속 발굴되고 있으니까 1만여 명 되지 않을까. 이 문제를 1만인의 연대로 해결해보자는 것이죠.”
11일 서울 옥수동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시민평화 법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재단은 피해자분들 모셔오는 ‘초청 준비’만 하고 있어요. 이분들이 한국 오시는 것을 결정하시는 것도 사실 힘들어하세요. 이분들 마을에 들어갔더니 ‘그 무서운 데를 어떻게 가’라든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에요. 올해가 50주년이지만 이분들은 아직도 그날에 갇혀 살고 계시는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2015년 처음 피해자들을 초청하셨죠.
“가장 큰 것은 이분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돼요. 2015년 오셨던 퐁니·퐁넛마을의 응우옌 티 탄(57) 아주머니가 이번에 또 오시거든요. 베트남 평화기행 프로그램을 하는데, 한국인을 모시고 가면 안 만나려고 하셨어요. 그러셨던 분이 ‘한국을 오기 전에는 정말 두렵고 무서운 나라였는데, 이제는 그리운 친구가 있고, 추억이 있는 곳이 됐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에 서 있는 한국군 증오비 앞에서 1966년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에 서 있는 한국군 증오비 앞에서 1966년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탄 아주머니가 무슨 일을 겪었나요.
“8살 때였어요. 아버지는 학살 전에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아이 넷을 키우는데, 시장에 물건 팔러 나가고, 이모가 아이들을 돌보려고 와 있었답니다. 이모한테도 10개월 된 아이가 있었고요.”
집 밖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해지자 이모가 아이들에게 방공호로 들어가라고 했다. 잠시 뒤 한국군이 방공호 가까이 오더니 “나와라. 안 나오면 이거 던지겠다”며 몸짓으로 위협했다. 이모가 아이들에게 “나가라”고 했다.
“나가는 족족 총을 쐈어요. 탄 아주머니는 옆구리에 총을 맞았고, 나가서 보니까 오빠는 엉덩이가 다 나갔고, 언니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막냇동생은 입에 총을 맞아 숨을 쉴 때마다 피를 토해냈대요. 탄 아주머니는 죽어가는 동생을 업으려고 했는데, 업을 수가 없더래요. 오빠한테 달려가서 ‘동생이 죽는다. 어떻게 해야 돼? 내가 업을 수가 없어!’고 외쳤어요. 오빠는 걸을 수가 없었죠. 오빠가 ‘동생을 살리려면 엄마를 찾아야 돼!’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죠. 탄 아주머니는 걷다가 보니까 창자가 배 밖으로 다 흘러내렸대요. 창자를 안고 여덟 살 여자아이가 계속 ‘엄마! 엄마!’ 이러면서 엄마를 찾아다녔다고 기억해요.”
구 상임이사는 한신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93년 베트남으로 유학을 떠나 역사학을 전공했다. 베트남어는 현지에 가서 익혔다. 석사 과정을 하면서 그는 운명처럼 그의 삶을 바꿔놓을 문서를 발견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에서 한국의 서울지하철노조와 일본의 동일본여객철도노조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들에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에서 한국의 서울지하철노조와 일본의 동일본여객철도노조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들에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제가 처음 현장에 들어갔던 건 99년입니다. 45일간 다녔어요. 그때는 제 손에 자료가 하나 있었어요.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이라는 북베트남 문서였어요. 그 자료에 40여개의 학살이 언급돼 있었어요. 그 자료를 들고 의욕적으로 나섰는데, 75년 이후 지명을 다 바꿔놔서 굉장히 당황했어요. 그런데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누구든 붙들고 ‘혹시 한국군 학살 아세요?’ 하고 물으면 모든 사람이 다 이정표가 되어주셨어요. ‘아, 학살이 지천이구나! 남부 호찌민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을, 중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구나.’ 생각했죠.”
다 찾았습니까.
“99년에 제가 50여 개의 마을, 아마 그 이상을 다녔던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이 많이 가는 다낭과 호이안을 중심으로 1시간 거리 안에 수십 개의 학살 마을이 있어요. 하미 학살 현장은 30분밖에 안 걸려요.”
하미 학살 때 한국군에게 가족 12명을 잃은 학살 생존자 쯔엉티투 할머니(왼쪽)가 50주기 위령제에서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의 부축을 받고 서 있다.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하미 학살 때 한국군에게 가족 12명을 잃은 학살 생존자 쯔엉티투 할머니(왼쪽)가 50주기 위령제에서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의 부축을 받고 서 있다.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사과했는데.
“베트남 언론에 한 줄도 보도가 안 됐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감 발언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의 빚’이라든지 이런 내용이 베트남에는 한 줄도 보도가 안 돼서 베트남 분들은 전혀 모르고 계세요. 한국만 시끄러운 거예요. 사과했다고. 우리도 마찬가지일걸요? 일본 총리가 유감 발언하면 일본 언론들은 사과했다고 난리가 나는데, 정작 우리는 ‘사과 아니다’, 아니면 별로 관심 없잖아요? 베트남이 모르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는 거죠.”
1968년 음력 1월 14일 꽝남 성 하미 마을에서 한국군이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다. 그다음 날 불도저로 시신을 밀어버렸다고 한다.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인 강우일 주교를 단장으로 한 평화기행 참배단이 지난달 11일 현지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무엇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요.…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오늘 이 자리에서 135위 하미의 영령들과 유가족, 주민들께 삼가 엎드려 사죄 또 사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강우일 주교와 구수정 상임이사 등 한베평화재단 참배단이 3월11일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에서 유가족과 주민들 앞에 사죄의 절을 올리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강우일 주교와 구수정 상임이사 등 한베평화재단 참배단이 3월11일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에서 유가족과 주민들 앞에 사죄의 절을 올리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

“베트남 언론이 도배했습니다. 닷새 뒤 ‘밀라이 학살 50주기’가 있었는데, 그쪽 관계자들이 저에게 전화해서 ‘너희가 너무 세게 사과해서, 우리는 조명도 못 받았다’라고 농담하더라고요. 우리에게 가려 미국 사람들이 말로 한 사과는 기사화가 안 된 거죠.”
베트남 정부도 ‘과거는 묻고 가자’고 해왔지 않나요.
“베트남 정부가 자신의 문제 때문에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에요. 위안부 문제나 제주 4·3도 50년, 60년이 되어서야 정리되잖아요. 이번에도 베트남 측 반응이 그랬대요. ‘베트남에서 전쟁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상처가 시뻘겋다.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멀쩡히 살아 있다. 한국 대통령의 사과가 이 상처를 전면에 불거지게 하면 지금 가까스로 이루고 있는 내부 통합과 베트남의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입장을 한국 정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과의 모범이라고 하면 항상 독일을 예로 들잖아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현장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해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죠. 지금까지 ‘독일은 사과했다’고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것이죠. 현장에서의 사과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포괄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과가 안 이루어졌죠. 사실을 인정하려면 진상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2016년 한베평화재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구수정 상임이사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2016년 한베평화재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구수정 상임이사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베트남 정부는 아니라는데….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했어요. 그렇지만 피해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잖아요. 베트남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번에 피해자들이 시민 평화 법정에 원고로 참석하기 위해 오시잖아요? 한국 정부와 참전군인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요구하세요. 사과하기에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 입수한 학살 문서는 누가 언제 만든 거죠.
“자료를 보니 이미 1966년부터 북베트남에 전범 조사 위원회가 있었어요. 남베트남 자료는 대부분 축소하거나 은폐하거나…. 파리 종전 협정에서 사인한 응우옌 티 빈 남베트남 임시 혁명정부 외무장관이 파리 협상 테이블에서 계속 한국군 학살에 대해 언급하거든요. 그때 ‘한국군이 3000여 건의 학살을 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정부도 조사한 적이 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트남에 가서 유감 발언을 하면서 베트남 중부 극빈 지역에 병원 5개와 학교 40여개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극빈 지역이라지만 한국군 전투부대가 들어갔던 중부 5개 성에 병원 하나씩, 한국군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마다 학교 40여개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 부지선정을 위해 조사가 필요했던 것이죠. 큰 ODA 사업이니까 베트남 정부로부터 학살 통계자료 같은 것을 받은 것 같아요.”
사후 관리도 하고 있나요.
“‘학살은 시인 안 하면서, 그런 지역에 학교를 짓고…. 우리가 모를 줄 아느냐? 눈 가리고 아웅 아니냐?’ 그런 정서가 있어요. 큰 학살이 있었던 빈호아에 92년 일본이 초등학교를 지었어요. 우리는 2005년 중학교를 지었습니다. 일본은 운동장이 있는 2층 건물을 튼튼하게 잘 지어서 지금도 잘 쓰는데, 우리는 담장도 없는 교실 8개를 지어줬는데 유리창이 깨지고, 지붕에 물이 새 못 쓰고, 다시 건물을 지어 이전했어요.”
빈호아 마을에는 80년대 영국 작가가 들어와 한국군 학살 위령비를 세웠다. 나중에 베트남 사람들이 증오비를 세웠다. 80년대부터 독일 NGO가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의족·의수 작업을 하고 있다.
구 상임이사 글을 반박하는 참전군인도 많던데.
“이분들이 사실 억울한 일들이 참 많으시잖아요. 월급도 떼였고, 굉장히 젊은 나이에 국가의 명으로 가신 분들인데, 이분들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도 안 되고…. 저희가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분들은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참전 군인들도 많이 변하셨어요. ‘사실 민간인은 희생되었잖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 고의는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는 변하셨더라고요.”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방문, 참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방문, 참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구 상임이사는 한일 위안부 협정 이후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우리 시민이 많이 배우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 문제를 잘 풀면 일본은 정말 과거사에 관한 한 할 말이 없어집니다. 정말 전향적으로 사고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고, 실질적인 국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현 사원이 동영상 제작과 녹취를 도왔습니다.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과 수교한 이후 한국 대통령이 몇 번 유감을 표명했다.
1998년 12월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1년 쩐 득 르엉 국가 주석이 방한했을 때는 김 대통령이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조금 더 나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호찌민 묘소에 헌화한 뒤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응우엔후 거리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7’ 개막식 영상 축전에서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3월 23일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 만찬을 하며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구수정 상임이사는 보도할 때 ‘사과’란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감 발언이지, 이게 무슨 사과예요. ‘마음에 빚이 있다’는 건 내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이죠. 바로 그날 경주에 참전 기념탑이 섰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일본 총리가 ‘마음의 빚’ 어쩌고 한 그날 일본에 한국 점령 기념탑 같은 게 세워진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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