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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도덕 정부의 도덕 불감증

중앙일보 2018.04.13 01:35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고, 모든 사람이 도덕 쟁탈전에 나서는 나라가 한국이란 주장이 있다. 일본 교토대 오구라 기조 교수의 관찰이다. 최근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도덕과 무관한 운동선수나 연예인이라도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납득시킨 뒤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라고 묘사했다.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학력에 비춰 대충 이 정도면 괜찮다고 넘어가는 일본이나 서구와 달리 도덕 함유량에 대한 갈증이 큰 나라란 것이다.
 

전 정부 불통 따라갈 게 아니라
적폐청산하려면 적폐와 싸워야

과거 정권을 적폐로 모는 현 정권의 추상 같은 잣대에서 그런 정서를 느낀다. 적폐 척결 대상엔 갑질 문화와 같은 도덕 이슈가 많다. ‘세월호 7시간’을 집요하게 들이대고 ‘김윤옥 명품 가방’을 흘리는 건 도덕성 자극이다.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터뜨리기 위해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도덕 사회에서 전임자가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거야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세월호 비극이라면 가슴을 더 여밀 필요가 있기도 하다.
 
중요한 건 오버한다 싶을 정도의 그런 융단 폭격으로 대한민국은 이제 안전 코리아가 됐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쪽이 많다. 왜 아닌지에 대한 조사가 있다. 세월호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관피아가 정피아로 이름만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에 실패한 19대 민주당 의원 40명 중 절반이 이 정부 들어 좋은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김기식 금감원장은 그중 한 사람이다. 문 정부 대표 코드인 참여연대 출신으로 으뜸 도덕론자다.
 
그런데 이제 보니 말로만 도덕군자였다는 것 아닌가.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 수장은 도덕성이 생명이고 전 원장도 도덕성 문제로 물러난 마당이다. 그렇다면 교체가 외길이다. 그런데도 ‘관행’이라며 귀를 닫는 청와대다. 오만 아니면 도덕 불감증이다. 적폐 청산을 1호 국정 과제로 내걸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도덕 정권이다. 설마 도덕을 모를 리는 없을 게다. 아마도 무오류 참여연대, 무결점 정권에 흠이 나선 안된다는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다. 말하자면 적폐가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거고 적폐를 적폐로 청산하겠다는 건데 영이 설 까닭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도덕을 외치던 인사들의 도덕 파산에 눈감는 억지가 이젠 습관적으로 반복된다는 거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격세 상속엔 ‘국세청이 권하는 합법적 절세 방식’이라고 감쌌다. 공직 배제 5대 원칙을 몇 가지씩 위반한 인사로 내각을 꾸려 놓고 ‘역대 가장 균형인사·탕평인사·통합인사’라고 우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사 검증은 역대 가장 깐깐한 민정수석이었던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도 그가 결재한 인사에서 도덕성 논란이 많은 건 왜 그런 것인가. ‘제 눈의 들보’에 눈감는 이중 잣대 때문이다. 그러니 전 정권 낙하산은 ‘적폐’에 ‘끼리끼리’고, 자신들 낙하산은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전문가’로 둔갑한다. 기억할 건 역대 정부가 죄다 그러다 고장 났다는 사실이다. 유체이탈 화법에 우격다짐이 ‘소포모어 징크스’를 불렀다.
 
독선과 오기, 불통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 시절 두 전직 대통령을 향해 가장 많이 날려 보낸 비판이다. 이제 와서 똑같은 말로 비판 받는 건 도덕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면 전 정권, 전전 정권이 아니라 이중 잣대란 적폐 자체와 싸워야 한다. 남을 단죄할 땐 도덕주의 칼을 내밀고 자신은 도덕을 초월하는 건 그냥 적폐 따라 하기다. 남에겐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게 채근담에 적혀 있는 도덕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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