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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청년들이 '미래 걱정'만 할 수 있도록

중앙일보 2018.04.13 01:35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태윤 내셔널부 기자

이태윤 내셔널부 기자

“한 명씩 들어가겠습니다. 앞사람부터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지난 11일 오후 4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고시원에서 진행된 행정안전부의 불시 안전 점검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긴급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긴급할 일 없는 상황을 긴급하게 보이도록 만든 일등 공신은 ‘장소’였다. 고시원 4층의 복도 폭은 1m였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설 수 없었다. 그마저도 늘어선 빨래건조대가 길을 막았다. 1층부터 4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진행된 안전 검사를 위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일렬’로 줄을 섰다. 4층 복도를 지날 땐 아예 옆으로 몸을 틀어 이동했다.
 
고시원·노래연습장·산후조리원 등 23개 업종은 다중이용 업소로 분류된다. 2006년 제정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영업장 내부 피난통로는 1m 20㎝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어져 이런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5㎡(1.5평) 남짓한 고시원 방 안은 성인 남자 3명이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답답한 실내를 조금이라도 넓히고 싶어서였을까. 방 안에 있어야 할 소화기 몇 대가 복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생산된 지 10년이 훌쩍 넘은 것들이 상당수였다. 4층에 있는 가스누출 감지 장치는 아예 코드가 전원에서 빠져 있었다. 불이라도 나면 어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런 고시원은 사방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부터 정부가 ‘국가안전대진단’의 하나로 고시원 1275곳을 점검해 보니 19.5%인 249곳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업소 내부구조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스프링클러 설비 기능을 임의로 정지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약 25만7000명이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시험 준비자(65만2000명)의 39.4%다.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인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량진 같은 학원가 고시원에서 산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상당수 고시원이 그 이상을 담보로 요구하고 있다는 게 이번 안전점검에서 드러났다. 바로 취업준비생들의 안전과 생명이다. 취직 걱정 못지않게 현실의 안전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게 많은 취준생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에게 취업은 보장하지 못해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전은 확보해 주는 것, 그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닐까.
 
이태윤 내셔널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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