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윤 내셔널부 기자
지난 11일 오후 4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고시원에서 진행된 행정안전부의 불시 안전 점검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긴급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긴급할 일 없는 상황을 긴급하게 보이도록 만든 일등 공신은 ‘장소’였다. 고시원 4층의 복도 폭은 1m였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설 수 없었다. 그마저도 늘어선 빨래건조대가 길을 막았다. 1층부터 4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진행된 안전 검사를 위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일렬’로 줄을 섰다. 4층 복도를 지날 땐 아예 옆으로 몸을 틀어 이동했다.
고시원·노래연습장·산후조리원 등 23개 업종은 다중이용 업소로 분류된다. 2006년 제정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영업장 내부 피난통로는 1m 20㎝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어져 이런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13/2ab03570-a16a-4e1b-9fbe-ddea1a58ea7f.jpg)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고시원은 사방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부터 정부가 ‘국가안전대진단’의 하나로 고시원 1275곳을 점검해 보니 19.5%인 249곳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업소 내부구조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스프링클러 설비 기능을 임의로 정지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약 25만7000명이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시험 준비자(65만2000명)의 39.4%다.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인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량진 같은 학원가 고시원에서 산다.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상당수 고시원이 그 이상을 담보로 요구하고 있다는 게 이번 안전점검에서 드러났다. 바로 취업준비생들의 안전과 생명이다. 취직 걱정 못지않게 현실의 안전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게 많은 취준생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에게 취업은 보장하지 못해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전은 확보해 주는 것, 그것이 국가의 의무가 아닐까.
이태윤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