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52시간, 저녁을 맞이하다

중앙일보 2018.04.13 01:30 종합 28면 지면보기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주 52시간으로 근무 한계를 규제하는 법률의 시행이 불과 수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란 자조 섞인 말처럼 그야말로 ‘회사인간’이었던 사람들에겐 꿈과 같았던 저녁 자유시간이 이제 주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미 하루 8시간보다 적은 근무시간을 규칙으로 만든 회사도 있습니다. 초기 제도의 정착을 위해 근무시간 종료 전 안내 방송이 나오고 다시 30분이 지나면 강제로 컴퓨터의 전원이 꺼져 회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합니다. 오랜 시간 습관처럼 회사에 남아야 했기에 8시간 근무를 채우고 나가면서도 “저 먼저 일찍 들어가겠습니다”라는 논리에 맞지 않는 인사를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상사에게 하던 이상한 예절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생경한 모습입니다.
 
빅 데이터 4/13

빅 데이터 4/13

돌이켜보면 큰 기업들부터 주 5일제로 토요일 회사에 가지 않게 된 것도 불과 15년이 되지 않습니다. 그사이 변화는 금요일에 출발하는 2박3일의 여행이 가능해진 것뿐 아니라, 토요일에 만나던 친구들과의 모임이 ‘불타는 금요일’로 이동한 후 다시 목요일 술자리로 정착하게 된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습니다.
 
52시간의 규칙이 정착되면 ‘일하는 주중’과 ‘쉬는 주말’로 일주일을 둘로 크게 나눠 썼던 템포가 ‘일하는 낮’과 ‘쉬는 저녁’으로 하루 안에서 쪼개어지는 리듬으로 바뀔 것입니다. 일요일 밤 개그 프로그램이 끝나는 음악이 들릴 때 엄습하는 월요병의 공포는, 단순히 다음날 받을 스트레스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한 주 내내 혹사하는 몸과 마음의 부담 시작점에서 느끼는 아득함입니다. 끝까지 몰아붙이는 혹독한 북풍한설 같은 주중의 하루씩을 잘게 쪼개어 매일 조금씩 쉬며 갈 수 있다면, 한숨에 해낸 긴 자맥질 후의 가쁜 숨고름이 아니라 호흡법을 익힌 자유형의 달인과 같이 일상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 터입니다.
 
휴식을 위한 쉼표가 일주일의 긴 주기가 아니라 매일의 끝마다 하루의 마침표처럼 허락되는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것보다 늘 지치지 않도록 저마다의 박자를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와 각자의 일상을 스스로 계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도적 삶이 더 큰 선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