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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 다시 될까?" 미세먼지에 달린 식목일 운명

중앙일보 2018.04.13 01:02
[더,오래] 성태원의 날씨이야기(18)
식목일이자 청명인 지난 4월 5일 시민들이 봄비를 맞으며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걷고 있다. [중앙포토]

식목일이자 청명인 지난 4월 5일 시민들이 봄비를 맞으며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걷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5일 목요일은 제73회 식목일이자 청명(淸明) 절기였다. 24절기 중 다섯 번째인 청명은 어느 때보다 나무 심기 좋은 절기로 전해져 왔다. 조상들은 하늘이 차츰 맑아지고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청명 즈음부터는 농사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준비로 바빴다.
 
그런 가운데서 식목(植木)에도 신경을 썼다. 본격적인 봄을 맞아 나무 심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익살스러운 속담이 그래서 전해진다.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이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난다 했으니 과장이 좀 심하긴 하다. 청명 즈음엔 ‘뭐든지 심으면 잘 자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구온난화로 식목일 앞당기자는 주장 나와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후손이 오랫동안 청명 절기와 함께 해온 4월 5일 식목일을 열흘 정도는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흥미롭다. 일부 학자는 아예 3월 27~28일로 당겨야 한다며 구체적인 날짜까지 제시한다. 절기로는 오히려 춘분(3월 20일 또는 21일)에 가깝게 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현대 기상학과 산림과학,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식목일을 제정했던 1946년에서 70여년이 지난 최근 식목일 평균기온이 2~4℃ 상승했다는 점을 가장 주된 이유로 꼽는다. 제정 당시보다 기온이 많이 높아진 만큼 전국에 걸친 ‘식목 적정 시기’도 빨라져야 한다는 논리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7~2016년)의 식목일 평균기온이 1940년대보다 1.5~3.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최근 10년간 식목일 평균기온은 10.2℃로 1940년대(7.9℃)보다 2.3℃ 올랐다. 이는 1940년대 제주도의 식목일 평균기온(10.1℃)과 비슷하다.
 
 
4월 5일 식목일 봄비 내린 서울 휘경동 홍릉수목원에서 이제 막 개화한 산철쭉이 빗물에 젖어있다. [중앙포토]

4월 5일 식목일 봄비 내린 서울 휘경동 홍릉수목원에서 이제 막 개화한 산철쭉이 빗물에 젖어있다. [중앙포토]

 
강릉의 최근 10년간 식목일 평균기온은 10.6℃로 1940년대(6.7℃)보다 3.9℃ 높아 오름폭이 가장 컸다. 대구(3.7℃), 광주(3.3℃), 전주(2.5℃), 제주(2.4℃), 부산(2.3℃) 순으로 기온 상승 폭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기온 상승 폭이 가장 컸던 강릉은 1940년대의 식목일 기온대가 최근에는 3월 26일께 나타나 10일가량 빨라졌다. 1940년대 식목일의 주요 도시 평균기온이 최근에는 3월 하순경에 나타나고 있다는 결론이다.
 
산림과학원의 이런 분석도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나뭇잎이 나는 시기와 땅속 온도를 분석해 보니 일평균기온이 6.5℃일 때가 나무 심기에 가장 알맞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내 주요 도시의 최근 10년간 2~4월 일평균기온을 분석해보니 6.5℃를 기록하는 시점이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평년에는 일평균기온이 6.5℃ 이상을 처음 기록한 날짜가 3월 19일(6.8℃)로 나타났고, 최근 10년은 3월 17일(8.0℃)로 평년보다 이틀 빨랐다. 주요 도시 중 6.5℃를 기록하는 날짜가 가장 빠른 도시는 제주도로 평년은 2월 12일(6.7℃), 최근 10년은 2월 1일(6.9℃)이었다. 최근 10년간 식목일의 땅속 5㎝ 온도도 1940년대보다 3.1~4.9℃ 상승했다.
 
일부 식물학자는 요즘은 4월로 들어서면 이미 꽃과 눈이 틔기 시작해 뿌리를 건드리면 나무가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며 식목일을 앞당기는 게 순리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도 4월 5일 식목일을 고수하는 쪽이 다수파다. 정부가 우선 그렇다. 식목일이 올해로 73번째를 맞을 정도로 오래돼 국민의 인식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데다 식목일 변경에 따른 행정력 낭비, 홍보비용 부담 등을 고려해 ‘4월 5일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식목일을 3월로 옮기자는 주장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얘기가 나왔다가 들어갔고, 2013년 다시 논의됐으나 수면 아래에 잠겼다. 21세기 들어 ‘3월 식목일’ 주장은 해마다 식목일이 가까워져 오면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해가 갈수록 심해져 더욱 그렇다.


 
공휴일 지정·반납 반복한 식목일의 기구한 운명
서울 자연학습장 일대에서 식목일 나무심기 행사가 끝난 후 행사 관계자가 장미묘목에 물을 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서울 자연학습장 일대에서 식목일 나무심기 행사가 끝난 후 행사 관계자가 장미묘목에 물을 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안 그래도 한국은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가운데 봄과 가을은 실종 위기를 겪는 소위 ‘아열대 기후화’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또한 ‘3월 식목일’ 주장에 원군이 되고 있다.
 
1946년 4월 5일,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식목일의 운명은 기구했다. 당시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1949년 공휴일 지정까지 받는다. 하지만 1960년 일하기 바쁜 시기에 공휴일 지정 명분이 약하다며 공휴일 폐지 결정에 이른다. 이듬해인 1961년엔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며 공휴일로 부활한다.
 
2006년엔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다시 공휴일에서 제외돼 기념일로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까지 받지만, 그동안 한국의 민둥산이 우거진 나무숲으로 변한 데에는 식목일도 한몫했다고 봐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때문에 3월로 기념일을 당겨야 한다는 소리까지 듣긴 하지만 청명 절기와 함께 해온 식목일의 공(功)은 쉬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미세먼지 재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식목일을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국민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식목일의 운명이 또 한 번 바뀔지도 모르겠다.
 
성태원 더스쿠프 객원기자 iex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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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원 성태원 더스쿠프 객원기자 필진

[성태원의 날씨이야기] 은퇴자들은 ‘날씨 경영’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도 잘 지킬 수 있다. 날씨가 몸과 마음 건강에 다 같이 영향을 크게 미치는 요소라서 그렇다. 한창때는 대개 직장이나 일터에 온종일 붙박이처럼 묶여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은퇴하면 시간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주어지다 보니 바깥나들이가 많아지고 이래저래 날씨에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은퇴자를 위한 날씨 경영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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