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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버려진 채석장, 빛과 음악을 만났더니 …

중앙일보 2018.04.13 00:20 종합 24면 지면보기
전시 기획한 브루노 모니에 대표
프랑스 컬처스페이스는 쓸모 없어진 산업 시설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전시를 기획했다. 사진은 지난해 ‘보쉬, 브뤼겔’전과 2014년 ‘클림트와 빈 ’전이 열린 ‘빛의 채석장’ 풍경.

프랑스 컬처스페이스는 쓸모 없어진 산업 시설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전시를 기획했다. 사진은 지난해 ‘보쉬, 브뤼겔’전과 2014년 ‘클림트와 빈 ’전이 열린 ‘빛의 채석장’ 풍경.

프랑스 남부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에 자리한 옛 채석장. 1935년 문 닫은 이래 80여년간 버려져 있던 이곳에 2012년부터 관광객이 줄잇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이곳을 찾은 사람은 약 56만 명.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에서 열리는 독특한 전시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 공간 '빛의 채석장'
한 해 56만 명 찾는 관광 명소로
9월 제주에 '빛의 벙커' 오픈

 
2012년엔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이미지가 채석장 동굴의 벽과 바닥, 천장을 채웠고, 지난해엔 히에로니무스 보쉬, 피터 브뤼겔 등의 환상적인 이미지로 뒤덮인 동굴에 그림과 어울리는 음악이 넘쳐 흘렀다. 쓸모없어진 채석장 동굴이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술을 입고 거대한 예술 전시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첨단 ‘맵핑 아트’의 힘이다.
 
빛의 채석장은 그간 버려져 있던 채석장이 얻은 새로운 이름이다. 프랑스의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사가 추진한 미디어 아트 전시가 이룬 성과다. ‘빛의 채석장’의 성공은 13일 파리에서 문을 여는 ‘빛의 아틀리에’에 이어 9월 제주도의 ‘빛의 벙커’ 전시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컬처스페이스의 브루노 모니에(Bruno Monnier) 대표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제주도 성산읍에 자리한 옛 통신시설 벙커 자리. 컬처스페이스와 한국 IT기업 티모넷과 함께 추진하는 새로운 전시 공간이 만들어질 현장이다. 그를 만나봤다.
 
지난해 ‘보쉬, 브뤼겔’전과 2014년 ‘클림트와 빈 ’전이 열린 ‘빛의 채석장’ 풍경.

지난해 ‘보쉬, 브뤼겔’전과 2014년 ‘클림트와 빈 ’전이 열린 ‘빛의 채석장’ 풍경.

‘빛의 채석장’이 레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우리가 기획한 아미엑스(AMIEX
  
13일 파리 11구 지역 철제 주조공장 자리에 개관하는 ‘빛의 아틀리에’. [사진 컬처스페이스]

13일 파리 11구 지역 철제 주조공장 자리에 개관하는 ‘빛의 아틀리에’. [사진 컬처스페이스]

: Art and Music Immersive Experience)프로젝트의 성과다. 아미엑스란 폐광산이나 폐공장, 폐발전소 등 폐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활용해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 아트를 말한다. 이 전시로 쇠퇴했던 장소도 되살리고, 관람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컬처스페이스 대표 브루노 모니에. 최정동 기자

컬처스페이스 대표 브루노 모니에. 최정동 기자

전시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88년에 컬처스페이스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전시 개발, 새로운 문화공간 설립 등의 일을 해왔다. 예전에 렘브란트 전시 등 많은 미술품 전시를 기획하며 전시 준비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겪었다. 그림을 박물관에서 빌리고 운반하는 작업까지 절차도 까다롭고, 3년 정도 준비 기간에 예산이 많이 든다. 그만큼 관람료도 비싸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콘셉트의 전시를 시도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렇게 찾은 것이 미디어 아트였다.”
 
굳이 전시 공간을 버려진 채석장으로 택한 이유는.
“컬처스페이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폐 산업시설을 관리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 더는 쓸모 없어진 장소의 재활용을 고민하는 도시나 마을은 세계 어디에나 있지 않나. 이왕이면 그런 장소에 첨단 미디어 아트를 접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2년 연 첫 전시 ‘고갱, 반 고흐, 색의 화가들’을 보러 온 관람객이 24만 명에 달했다.”
 
전시의 어떤 점이 사람을 끌어모은 것일까.
“이전에 이런 몰입감을 선사한 전시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미술 전시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이었다면, ‘빛의 채석장’에선 사람들이 이미지로 채워진 공간을 직접 걸어 다니며 예술을 체험한다. 클림트 전시를 보며 눈물 흘리는 관람객도 있었다. 명화가 주는 감동과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는 복제가 쉽다. 경쟁 기업이 빨리 등장할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생각하기에 경쟁 상대는 아직 없다(웃음). 그렇게 단순한 프로젝션 맵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의 특수성, 아티스트의 창의성, 100여 개의 장비를 이용한 프로젝션과 음향 기술 등에서 아미엑스 퀄리티를 흉내 내기는 쉽지 않다고 자부한다. 현재 6명의 아티스트가 모두 이탈리아 출신인데, 오페라 미술감독 출신부터 전직 음대 교수, 미디어 아트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탁월하다.”
 
'빛의 채석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풍경. [사진 컬처스페이스]

'빛의 채석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풍경. [사진 컬처스페이스]

맵핑 아트 기술이 진보하면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관람으로 가지 않을까.
“VR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VR로 체험하려면 관람객이 헤드셋을 써야 한다. 굳이 장소를 특별한 곳으로 할 이유도 없다. 가족 혹은 친구, 연인과 손잡고 함께 걸으면서, 그림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네모난 프레임에 고해상도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는 구글 아트도 있는 시대다. 그러나 구글 아트가 그림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도구라면, 아미엑스는 감성적인 서비스 시스템이란 점에서 다르다.”
 
오리지널 명화의 이미지를 공간에 맞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원작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 미술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대중이 예술을 공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내가 프랑스 지방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빛의 채석장’ 전시를 보고 감동 받아 원작을 직접 보기 위해 미술관에 처음 가봤다고 하더라. 사람들에게 미술과 더 친근해질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제주 ‘빛의 벙커’가 첫 해외 프로젝트라고.
“벙커는 예전에 KT가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지하 공간으로 면적이 2975㎡(900평), 높이 5.5m 정도 된다. ‘빛의 벙커’ 가 한국인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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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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