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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10년차 진명호가 던진 건 절실함

중앙일보 2018.04.13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힘든 시기를 가족의 응원으로 극복했다“는 롯데 진명호. 그는 아들을 따라 뒷머리를 길렀다. [양광삼 기자]

’힘든 시기를 가족의 응원으로 극복했다“는 롯데 진명호. 그는 아들을 따라 뒷머리를 길렀다. [양광삼 기자]

프로야구 롯데 투수 진명호(29)는 11일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넥센전 2회 초 1사 상황에서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 투수 송승준이 갑자기 왼쪽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급히 투입됐다. 그는 3과 3분의 2이닝 동안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다. 11명의 타자를 맞아 안타나 볼넷을 한 개도 내주지 않았다. 삼진은 6개나 잡았다. 직구는 최고 시속 145㎞였지만 힘이 있었다. 슬라이더도 예리하게 휘어 들어갔다. 예상 밖의 투수가 호투 덕분일까. 롯데 타자들도 힘을 냈다. 최하위 롯데는 올 시즌 처음 2연승을 달렸다.
 

최하위 롯데 마운드의 새로운 희망
올해 8경기 출전, 평균자책점 1.80
머리숱 없는 아들 따라 같은 스타일

진명호는 “이상하리만큼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다”며 “사실 마지막 이닝(5회)은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오랜만에 긴 이닝을 던졌다. 팔에 힘이 떨어져 변화구가 손에서 막 빠졌다. 맞더라도 가운데로 던지자는 생각으로 힘을 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요즘 말로 이날 그는 ‘인생 경기’를 했다. 2012년 8월 21일 대구 삼성전 이후 2059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하지만 그는 “승리를 따낸 것보다는 팀이 이겨서 정말 기쁘다. 우리 팀 1군에 투수가 13명인데, 나는 그중 13번째 (실력의) 투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팀 투수들 기량이 좋다. 롯데는 분위기를 한 번 타면 언제든 반등할 수 있는 팀”이라고 말했다.
 
진명호는 프로 10년 차 투수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두 번째로 롯데의 선택을 받았다. 계약금은 1억5000만원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올해 연봉이 3300만원이다. 프로야구 최저 연봉(2700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 바꿔 말하면 그의 지난 10년이 순탄치 않았다는 뜻이다.
 
큰 키(1m92㎝)에서 내리꽂는 시속 150㎞짜리 직구와 낙차 큰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진명호는, 한때 롯데 마운드의 미래였다. 입단 첫해인 2009년부터 출전 기회를 얻었다. 꾸준히 출장시간을 늘려간 그는 2012년 23경기에 나와 60이닝을 던졌고, 2승1패·1홀드, 평균자책점 3.45을 기록했다. 진명호가 허리를 든든하게 받친 그해, 롯데는 가을야구를 했다.
 
2013년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진명호는 시즌을 마치고 국군체육부대(상무야구단)에 입대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그는 “입대 1년 차 때는 허리가 아파 공을 잡아보지도 못했다. 2년차 때 통증을 참고 공을 던졌지만, 시속 135㎞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롯데 복귀 첫해였던 2016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어깨가 아팠다. 진명호는 “주사를 맞아도 통증이 심했다. 한국에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큰 이상이 없다’고만 했다. 결국 일본에 가서 수술했다”며 “수술 초기 통증이 가시지 않아 야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1년여간의 재활 끝에 지난해 5월부터 퓨처스리그에서 공을 던졌다. 8월에는 1군에 올라왔다. 4경기에 등판해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어깨가 더는 아프지 않았다.
 
진명호는 올 시즌 8경기에 나와 10이닝을 던졌고, 평균자책점은 1.80이다. 그에겐 1군으로서 7번째 시즌이지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된 건 처음이다. 그는 “나는 아직 정확한 보직이 없다. 어깨 수술 뒤라 트레이닝 파트에선 아프지 않게 한 시즌을 보내는 걸 목표로 하자고 했다”며 “시즌 마지막까지 잘 버텨 동료들과 가을야구를 경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명호는 1980년대 느낌의 장발 스타일로 마운드에 오른다. 그는 “18개월 된 아들(이현)이 뒷머리만 길고 머리숱이 없는 편이다. 아들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려고 뒷머리를 기른다. 동료들은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 보인다’고 놀리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이어 “힘들고 지칠 때 가족이 큰 힘이 됐다. 너무 오래 기다려줬다”며 “한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이다. 서른에 가까워진 만큼, 앞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아이에게 아빠가 노력하는 야구선수였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울산=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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