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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사업 확대 … ‘에릭 클랩톤 기타’ 만든 깁슨 문 닫나

중앙일보 2018.04.13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 이 썼던 64년식 깁슨 기타. [중앙포토]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 이 썼던 64년식 깁슨 기타. [중앙포토]

미국 내슈빌에 본사를 둔 깁슨은 116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자기타 제조업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에릭 클랩톤, BB킹, 카를로스 산타나 등이 애지중지한 전자기타의 명가로 통한다.
 

116년 전통 전자기타 제조 미 업체
컴퓨터음악 선호 수요 변화 못 읽어
6000억원 못 갚으면 올 여름 파산

블루스 재즈기타리스트인 BB킹이 순회공연 도중 불이 난 숙소에서 깁슨 기타를 빼내 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스토리는 전설로 통한다. 당시 화재는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두 명의 남자가 결투를 벌이다 일어났는데, 깁슨을 갖고 나온 BB킹이 그 여자의 이름을 따 루실로 명명하기도 했다.
 
한때 아티스트들이 제 발로 찾아오던 깁슨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이번 여름까지 5억6000만 달러(약 6000억원)의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할 운명에 처해있다. 연간 매출이 10억 달러가 넘지만, 3억7500만 달러에 달하는 선순위 담보채권 만기가 8월 1일로 다가왔다. 7월까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깁슨은 1억8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융자도 바로 갚아야 한다.
 
깁슨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헨리 저스키위츠는 최근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내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솔직히 내 실수”라고 인정했다. 저스키위츠는 깁슨 브랜드를 ‘뮤직 라이프스타일계의 나이키’로 만들고 싶어 무리한 사업확장을 했다. 투자자와 채권자들은 저스키위츠가 제 발로 물러나야 구조조정을 하거나 감자 후 증자를 통한 채무상환 등으로 깁슨 브랜드를 살려 나갈 수 있다고 아우성이다.
 
깁슨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시대가 변했다는 점이다. 그래미상을 받은 재즈 기타리스트 알디 메올라는 “젊은 세대는 기타보다는 다른 형태의 음악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타에 대한 수요를 컴퓨터 음악에 빼앗긴 것이다.
 
수요가 주는 상황에서 저스키위츠는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일본 가전업체인 온쿄를 인수한 데 이어 2014년에는 필립스의 오디오 및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욱스 이노베이션을 1억3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기타 업계에서는 ‘빅 가이’였지만, 새롭게 진출한 음향가전 시장에서는 더 큰 ‘빅 가이’와 경쟁을 벌여야 했다. 그만큼 현금이 술술 빠져나갔다.
 
여기에 기타 소재로 쓰이는 로즈우드와 마호가니의 벌목이 금지되는 등 원자재 조달에 애로를 겪었다. 수입 과정이 복잡해지면 당연히 비용은 올라가는 법이다. 깁슨은 공장 3곳에서 기타를 만든다. 멤피스 공장에서는 속이 빈 할로바디를 만들고, 내슈빌에서는 솔리드 바디를 만들어 몬타나주의 보즈만에서 조립한다. 깁슨 기타 한대 만드는데 한 달 정도 걸리고, 한 달에 60대 정도만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장인의 손길을 통해 뛰어난 음향을 구현하고 있지만 시장 축소로 생산 경쟁력은 떨어졌다. 저스키위츠는 “모든 생산이 미국 내에서 이뤄지면서 예술성을 담보하고 있다”라며 “그것이 깁슨이고, 고객이 깁슨으로부터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통망도 붕괴했다. 원자재와 부품 값을 제때 조달하지 못해 전체 수급이 엉클어졌다. 깁슨 딜러를 했던 프랭크 글리오나는 “지난 2∼3년간 모든 딜러가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면서 “다시는 깁슨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는 딜러가 속출했다”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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