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현의 글로벌 J카페] 망가진 도이체방크 수선할 새 '봉제사(Sewing)'의 등장

중앙일보 2018.04.10 00:25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가 새 수장을 맞는다.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도이체방크의 선택은 '검증된 도이체방크맨' 이었다.
 

크리스티안 제빙 신임 CEO 임명
유명세 없지만 검증된 '도이체방크맨'

도이체방크 감독 이사회(감사회)는 8일(현지시간)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크리스티안 제빙(Christian Sewing·48) 소매금융 담당 대표를 임명했다. 
 
존 크라이언 CEO는 임기를 2년 남긴 채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폴 아흘라이트너(Paul Achleitner) 감사회 의장은 "제빙은 30년 가까이 일하며 제대로 훈련받은 강한 지도자라는 것을 증명했다"며 "도이체방크의 새 시대를 성공적으로 개척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흘라이트너 의장은 독일어를 할 수 있고 규제기관과 일할 수 있는 인물을 물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제빙은 9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올해 시작이 알찼지만, 그 정도가 우리의 야망이 될 수는 없다"며 "수익과 관련해 사업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 우리 은행의 주요 사업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철저히 분석할 것"이라며 "우리의 강점을 살려 투자하는 동시에 수익이 충분히 나지 않는 분야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성장 여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 감독이사회는 8일(현지시간) 크리스티안 제빙(48) 소매금융 담당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EPA=연합뉴스]

도이체방크 감독이사회는 8일(현지시간) 크리스티안 제빙(48) 소매금융 담당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EPA=연합뉴스]

그는 1989년 견습사원으로 도이체방크에 입사했다. 잠시 다른 모기지 은행에 있었던 기간(2005~2007년)을 제외하면 약 27년을 도이체방크에서 일했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 때문에 제빙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도이체방크 본사가 위치한 프랑크푸르트에서 320km 떨어진 오스나브뤼크로 돌아가는, 비교적 가정적인 성격이라는 것 정도다.
 
제빙은 2015년 이사회 멤버가 되면서 경영진에 합류했다. 이후 노조와 독일 내 소매금융 부분의 구조조정 협상을 원만하게 이끌어 사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블룸버그는 "제빙은 툭하면 도이체방크를 두드려 패는 독일 언론의 반발을 사지 않고 188개 영업점과 직원 4000명을 감축했다"고 보도했다. 자금세탁 의혹이 제기된 도이체방크 러시아 사업부 내사를 맡아 직원 1000명 규모의 증권 부분을 없애 사건을 수습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체방크 타워 [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이체방크 타워 [AP=연합뉴스]

'재봉(Sewing 영어 뜻)'이란 이름의 새 CEO 앞엔 도이체방크 '수선'이 최우선 과제로 놓여있다. 새 CEO 선임을 계기로 도이체방크가 투자금융을 버리고 소매금융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스-피터 벌그호프 호헨하임대 교수는 "제빙이 가장 뛰어난 후보는 아니었겠지만, 그가 준비된 상태로 후보군에 있었던 것"이라며 "대주주들의 의사도 중요하기 때문에 제빙이 어떤 전략을 펼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48년 전통의 도이체방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사세가 기울어 '세계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은행'이란 오명까지 쓴 상황이다. 
 
금융위기 당시 부실 모기지 담보부증권(MBS)을 판매한 혐의로 2016년 미국 법무부로부터 72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뉴욕에 상장된 도이체방크 시가총액의 3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도이체방크의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사무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도이체방크에 14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후 협상을 통해 벌금은 72억 달러로 줄었다.[AP=연합뉴스]

도이체방크의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사무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도이체방크에 14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후 협상을 통해 벌금은 72억 달러로 줄었다.[AP=연합뉴스]

도이체방크는 다른 경쟁사보다 크게 흔들렸고 회복은 더뎠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8년간 세 차례 자본확충을 통해 총 270억 유로(약 35조4000억원)를 모았다. 
 
아르헨티나, 노르웨이 등 해외 10여 개국 사업장을 폐쇄하고 독일 내 영업점을 정리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본확충과 조직개편에도 과거의 영광은 되찾지 못했다.
 
지난 2월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5억 유로(6558억원)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5년(86억 유로), 2016년(14억 유로)에 이어 3년째 적자다. 도이체방크 주가는 올해 들어 29% 하락했다. 
 
지난 3년 동안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지난 6년간 CEO가 3번 교체됐다.
 
변동성이 큰 트레이딩 사업에 수익을 의존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레이딩 업무가 한때는 이 투자은행의 캐시카우였으나 유럽과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다"며 "투자자들과 전·현직 임직원들은 트레이딩 부문을 더 축소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