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6억 들인 서울시의 택시 유니폼, “옷장 속에”

중앙일보 2018.04.10 00:01
서울시, 단속 예고하고 … 회사들에 ‘셀프 점검’만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법인택시 기사의 유니폼을 도입했다. 택시 기사 복장은 2011년 자율화됐지만, ‘서비스 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유니폼을 부활시켰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255개 서울 법인택시 회사의 기사 3만5000여 명에게 유니폼을 나눠주는데 시비 16억1000만원을 썼다. 한 사람당 청색 체크무늬 셔츠 두 벌, 검은색 조끼 한 벌로 약 4만원어치다. 바지는 본인이 가진 정장을 입어야 한다. 
 
일부 기사들도 “혈세 낭비” 지적  
 
티셔츠와 청바지, 모자를 착용한 한 법인택시 기사가 지난 6일 서울 강북구 기사식당 앞에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임선영 기자

티셔츠와 청바지, 모자를 착용한 한 법인택시 기사가 지난 6일 서울 강북구 기사식당 앞에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해 두 달간은 계도 기간이었지만, 서울시는 올해부터 유니폼 미착용으로 서울시 단속반에 적발되면 불이익을 준다고 예고했다. 사업자에게는 운행정지(1차 위반 시 3일, 2차 위반 때 5일)나 과징금 10만원, 기사에게는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세부 기준까지 마련했다. 유니폼이 의무화된 3개월이 지났지만, 예고와 달리 서울시는 아직 단속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난달 2주 동안 계도 위주의 점검을 법인택시 회사들로 구성된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에 맡겨 진행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5일 “조합의 점검 결과 80~90% 정도의 기사가 조끼까지 잘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고, 기사들의 반발도 고려해 당장 단속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취재 결과 법인택시 기사 상당수가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법인택시 회사들에 ‘셀프 점검’을 맡겨 두고 서울시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조차 “서울시가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도입한 법인택시 기사의 유니폼. 밝은 청색 체크무늬 셔츠에 조끼가 갖춰져 있다.[사진 서울시]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도입한 법인택시 기사의 유니폼. 밝은 청색 체크무늬 셔츠에 조끼가 갖춰져 있다.[사진 서울시]

티셔츠·청바지… 조끼 착용은 ‘제로’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기사 식당 앞.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주황색 법인택시들이 속속 도착했다. 서울시의 지침대로라면 기사들은 서울시가 지급한 유니폼을 입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사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기사 10명 중 5명은 티셔츠나 등산복 등 자유 복장이었다. 5명은 유니폼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정장 바지 대신 청바지나 서울시가 원래부터 금지해온 눈을 가린 모자를 착용한 기사도 있었다. 조끼까지 갖춰 입은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기사식당 앞에서 한 법인택시 기사가 유니폼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기사식당 앞에서 한 법인택시 기사가 유니폼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 임선영 기자

기사 서모(48)씨는 “하루 10시간씩 운전하는데 유니폼은 답답하다. 조끼는 받자마자 옷장 안에 넣어뒀고, 앞으로도 안 입을 것이다. 신축성이 없고 호주머니도 작아서 실용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기사식당 주인 정모(60)씨는 “최근 몇 달 사이 본 수백 명의 기사 중에서 조끼를 입은 사람은 한두 명 정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북구의 한 기사식당 앞에서 서울시의 유니폼 셔츠를 입은 운전사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북구의 한 기사식당 앞에서 서울시의 유니폼 셔츠를 입은 운전사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다. 임선영 기자

한국에서 택시기사 유니폼은 1970년대에 처음 도입됐는데, 법인택시는 회사에서, 개인택시는 기사 개인이 샀다. 하지만 불편하고 세탁이 힘들다는 이유로 2011년 폐지됐던 유니폼을 서울시가 6년 만에 재도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 기사들이 찢어진 청바지, 반바지, 모자 등을 착용해 승객들의 민원이 있었다”면서 “과거 택시 회사에서 제공한 저가의 유니폼에 기사들의 불만이 많아 시에서 유니폼을 사줬다”고 설명했다.  
 
“억지로 입는다고 서비스 마인드 생기냐” 반발도 
 
유니폼을 마지못해 입는 기사들도 불만이 많다. 기사 최모(78)씨는 “혹시나 단속이 두려워서 유니폼 셔츠를 입고 다니는 동료들이 있다”면서 “입기 싫은 유니폼을 억지로 입는다고 해서 친절한 마음이 저절로 생기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부 기사들은 출퇴근할 때 어쩔 수 없이 직업을 노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서울시의 지침에 따르면 조끼의 경우 동절기(11월 7일부터~3월 20일)엔 의무 착용이고, 하절기(5월 5일~9월 23일)엔 입지 않아도 된다. 이외의 간절기엔 ‘권고 사항’으로 뒀다. 하지만, 동절기엔 방한복 착용을 허용해 조끼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 때문에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사 김모(52)씨는 “선택에 맡긴다면 조끼는 왜 나눠줬는지 모르겠다. 10명 중 한두 명이 입을까 말까하다. 지난 겨울에도 입는 사람 거의 못 봤고, 올 겨울에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서비스 마인드와 근무 환경 개선 같이 이뤄져야”
 
기사들이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다 보니 택시 유니폼이 의무화된 지 모르는 시민들도 많다. 직장인 함초롬(29)씨는 “깔금한 복장이 보기에 좋은 건 당연하다. 이왕에 도입했다면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안 입는 이유를 찾아 개선해 착용률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본의 법인택시 운전기사들은 유니폼을 입는다.[사진 MK택시 홈페이지]

일본의 법인택시 운전기사들은 유니폼을 입는다.[사진 MK택시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유니폼 착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유니폼은 서비스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서울시의 도입 취지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착용률과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근본적인 서비스 마인드와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선 기사가 유니폼을 입은 택시가 일반 택시보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사로부터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